김 전 회장의 유족은 “고인이 서울 서대문구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24일 전했다.
김 전 회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고등수산학교(현 부산수산대)를 졸업했다. 원래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영문과에 가려고 했지만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는 수산 자원을 알 필요가 있다”는 조부의 권유에 따라 부산으로 향했다.
1956년 해무청 수산국 제조과장, 1960년 수산국장을 지냈다. 1961년 수산국이 농림부 소관으로 바뀌면서 농림부 수산국장 자격으로 1962년부터 한·일회담 어업대표로 나섰다. 1965년 한·일 협정이 체결된 이후 후속 회담에도 참여했다. 1966~1967년 수협중앙회 부회장으로 근무할 때는 일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1968년에는 쾌속정 운영회사인 한려개발 사장에 올랐다가 대림수산 창업주인 오진호 사장의 권유로 1979년부터 1995년까지 대림수산 사장을 지냈다. 사장 재직 시절 원양어업협회 부회장과 냉동수산물수출조합 이사장, 수산물수출조합 이사장도 겸임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는 대림수산 회장직을 맡았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는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지은 <전어지(佃漁志)>, 조선 후기 문신 김려가 쓴 최초의 어보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2007년과 2010년에 번역하기도 했다.
고인은 평생 모은 물고기 문양이 들어간 접시와 민화 등 850점을 국립수산과학원에 기증했다. 빈소는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6일, 장지는 충남 보령군의 선영이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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