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낀 韓무역…中경제 살아나도 흑자회복 장담 못한다 [도병욱의 무역적자 짚어보기]

입력 2022-10-25 17:31   수정 2022-10-26 00:09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338억4000만달러의 무역적자가 났다. 연간 기준 역대 최대인 206억2000만달러(1996년) 기록을 넘었다. 지금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무역적자는 400억달러를 넘을 수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대한민국의 무역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비(非)기축통화국의 대외신인도를 좌우하는 대표적 지표 중 하나다. 무역적자가 커지면 경상수지도 악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규모 무역적자는 한국의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준다. 무역수지가 악화되면 원화 가치도 떨어질 확률이 높다. 무역적자는 원·달러 환율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연간 기준 무역적자를 낸 건 2008년이 유일했다. 그만큼 한국 무역은 탄탄했다.
외환위기 이후 첫 6개월 연속 적자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의 수출입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한국은 월 10억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냈다. 지난해 6월과 9월엔 월 흑자가 40억달러를 넘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4억3000만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다. 코로나19 대확산으로 글로벌 소비가 급랭했던 2020년 4월을 제외하면 2012년 1월 이후 약 10년 만의 적자였다.

올 2, 3월엔 소폭 흑자를 냈지만 4월부터는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8월에는 적자폭이 94억9000만달러에 달했다. 1956년 무역통계 작성 이후 66년 만의 최대 적자였다. 6개월 연속 적자도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25년 만이었다.

이달 분위기도 좋지 않다. 1~20일(통관기준 잠정치) 기준으로 49억5000만달러 적자가 났다. 7개월 연속 적자가 유력한 상황이다. 올해 누적 무역적자는 역대 최대 규모다. 전체 무역액(수출+수입) 대비 비중은 -2.9%로 1997년(-3.0%) 후 최악이다.

올 상반기 무역적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입물가가 높아졌고, 그 결과 수출이 견조했음에도 적자가 났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까지 19개월 연속 월 최대 수출액(전년 동월 대비) 기록을 경신했다.



그럼에도 무역적자가 난 건 원자재 수입액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올 1~9월 원유,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원의 수입액은 1413억3000만달러로 전년 동기(670억달러)의 두 배 이상이었다.

지난해 9월 배럴당 70달러 수준이던 국제 유가는 올 들어 한때 120달러 수준으로 뛰었다. 작년 9월 MMBtu(열량단위)당 15달러가량이던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지난달 50달러를 넘었다. 석탄 가격도 1년 전과 비교하면 세 배가량 뛰었다. 한국처럼 각종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와 가공해 되파는 중간재 수출국으로선 무역적자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많다.

무역수지 악화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 프랑스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란 점에서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과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은 1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내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올 들어 매월 적자다. 독일은 무역흑자를 내고 있지만, 흑자 규모가 1~7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65.1% 줄었다.
수출마저 흔들린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액 증가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엔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마저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 1~20일 수출액은 32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5% 줄었다. 이달 말까지 지금 추세가 이어지면 2020년 10월 이후 2년 만에 전년 동기 대비 수출액이 줄어들게 된다. 원자재 가격 인상 여파로 수입액이 불어난 상황에서 수출까지 흔들리면 무역적자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출 부진의 핵심 원인으로는 반도체 경기 침체와 중국 경제 부진이 거론된다. 반도체는 한국의 수출 1위 품목(비중 약 20%)이고, 중국은 최대 수출 국가(비중 약 25%)다.

지난 1~20일 반도체 수출액은 55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8% 줄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달 8월부터 꺾였는데, 당시 26개월 만의 감소였다. 이달까지 포함하면 3개월 연속 수출 감소세가 이어질 수 있다. 지난달까지 계속됐던 17개월 연속 반도체 100억달러 수출 기록도 이달 깨질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경기는 불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엔 사회적 거리두기로 정보기술(IT) 기기가 세계적으로 많이 팔렸고, 그 덕분에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재고가 늘고 있다. 여기에 세계 각국의 물가가 치솟자 구매력이 저하됐고, 소비자들은 당장 급하지 않은 스마트폰이나 PC 등의 구매를 줄였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기업들이 투자 규모를 줄이면서 서버 등 기업부문 반도체 수요도 감소했다.

그 결과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뚝 떨어졌다. 지난달 D램 가격은 개당 2.85달러로 지난해 7월 고점(4.10달러) 대비 30.5% 급락했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5월 4.81달러에서 6월 4.67달러, 7월 4.49달러, 8월 4.42달러, 지난달 4.30달러 등으로 매달 떨어지는 추세다. 당장 반도체 경기가 회복될 분위기도 아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에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전 분기 대비 각각 13~18%, 15~20%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수출이 쉽게 늘어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대중(對中) 무역적자도 심각하다.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 5월 28년 만에 처음 적자 전환한 뒤 4개월 연속 적자가 이어지다가 9월 잠시 흑자로 돌아섰다. 4개월 연속 대중 무역적자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달 1~20일엔 또다시 11억6000만달러 규모 적자를 냈다. 올해 누적 대중 무역수지는 27억4000만달러지만 연간 흑자 여부는 불투명하다. 2009년 이후 해마다 200억달러 이상씩, 때론 600억달러 넘게 무역흑자를 기록했던 것과 대비된다.

정부는 대중 무역적자가 중국의 경기 둔화와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도시 봉쇄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중국 경기는 실제 둔화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계속해서 낮추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5.6%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달 11일엔 3.2%까지 하향 조정했다. 중국의 전년 동기 대비 수입 증가율도 올 3월 이후 5, 6월을 빼면 매달 0%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경제계에선 대중 무역적자는 단지 중국 경기나 봉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 중국의 무역 구조가 바뀐 결과며, 자칫하면 대중 무역적자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는 8월 보고서에서 대중 무역적자에는 중국 경기 둔화 외에도 △2차전지 핵심소재인 수산화리튬 수입 급증 △중국의 반도체 제조용 장비 국산화율 상승 △LCD(액정표시장치) 수입 증가 △중국의 한국 자동차 수요 감소에 따른 관련 부품 수출 부진 △중국의 수입소비세 부과에 따른 석유제품 수출 축소 △중국의 ‘애국소비’ 열풍에 의한 화장품 수출 감소세 등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경제가 회복돼도 대중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다는 진단이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배터리 원료 및 중간재 수입 급증 △공급망 재편에 따른 LCD 및 휴대용 컴퓨터 수입 증가 △중국의 한국 중간재 의존도 축소 등 때문에 대중 무역적자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대한상의는 “단기적으로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며 “장기적으로는 중간재 수입처 다변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적자 폭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분간 무역적자 불가피
연말께 무역수지가 개선될 가능성은 있을까. 전문가들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정만기 무역협회 부회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대표적인 무역적자 요인이 해소되더라도, 한국 무역구조가 정상화되려면 최소 10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이를 감안할 때 무역수지가 소폭 흑자를 내는 데도 최소 4개월은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연말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봉합된다고해도 내년 2분기에야 무역적자 행진이 끝나고, 매월 20억달러 이상 흑자를 내는 구조로 돌아가는 건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정 부회장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내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기술 격차 유지,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 등을 얼마나 빠르게 달성하느냐에 따라 흑자 전환 시기는 빨라지거나 늦춰질 수 있다”고 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가파른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무역적자 확대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무역적자 규모가 48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행도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 등 세계경제 ‘빅3’의 경기 위축이 계속돼 수출 부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상황을 보면 한국 수출은 주요국 일부의 경기만 부진해도 상당폭 둔화됐고, 금융위기 등 동반 부진이 발생할 경우엔 크게 위축됐다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정부 대응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눈에 띄는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역수지가 아니라 상품수지를 봐야 한다”(한덕수 국무총리), “무역수지 적자와 경상수지는 다르게 나온다”(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도 안일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포괄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역수지뿐만 아니라 경상수지를 함께 봐야 한다는 발언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가공·중계무역처럼 한국의 관세선을 통과하지 않는 수출은 무역수지에 반영되지 않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베트남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유럽에 수출한다면 경상수지 항목인 상품수지에는 수출로 잡히지만 무역수지에는 잡히지 않는다. 지난 6월까지는 상품수지가 흑자를 기록한 것도 사실이다. 또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한국의 수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약해서 무역적자가 생긴 건 아니다. 정부가 강조하듯 한국이 ‘제2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역적자가 예상보다 큰 상황인데도 충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건 문제라는 비판이 많다. 지난 7월 상품수지가 10년3개월 만에 적자를 기록했고, 8월엔 경상수지까지 적자 전환하는 등 경고음은 계속 높아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11월 총리 주재 확대무역투자전략회의를 열 계획이다.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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