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野蠻)’은 ‘야만한’ 따위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서기하는 광채’는 기호지방, 특히 충청도에서 쓰는 말이다. 어둠 속에서 인광처럼 퍼렇게 빛나는 것을 ‘서기한다’고 한다. ‘고양이가 서기한다’ ‘서기하는 호랑이의 눈’이라고 얼마든지 말한다.”(이어령)
‘서기한 광채’에서 ‘서기’를 ‘瑞氣’로 해석한다면 어법적으로 ‘서기한’은 틀린 표현이다. ‘瑞氣’란 ‘상서로운 기운’이다. ‘기운하다’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서기하다’도 어색하다. 다만, 이어령의 설명을 보면 그가 말한 ‘서기’는 김동리가 해석한 ‘瑞氣’는 아닌 것 같다. 이어령의 ‘서기하다’는 ‘서늘하고 오싹한 기운이 풍기다’ 정도의 의미에 가깝다.
‘야만’은 상태명사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미개하여 문화 수준이 낮은 상태’로 풀이한다. 이치상으론 ‘-하다’를 붙여 형용사를 만들 수 있다. 다만, 현실어법에선 ‘-하다’보다 ‘-스럽다’가 붙은 ‘야만스럽다’가 단어로 자리잡았다. 그 때문인지 ‘야만하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물론 당시 이어령 선생은 수사법을 말하고 있어 ‘야만하다’의 쓰임새를 단순히 문법적 잣대로 판단할 일은 아니다. 다만 학교문법에선 규범에서 일탈한 표현으로 본다는 뜻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누리꾼은 대통령과 평검사들 간 대화의 장에 주목했다. 이 자리에서 검사들은 거르지 않은 질문을 쏟아냈고, 급기야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며 언성을 높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생방송으로 이를 지켜보던 누리꾼은 곧바로 신조어 ‘검사스럽다’를 만들어 유포시켰다. 이는 ‘논리도 없이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하며 윗사람에게 대드는 행태, 즉 싸가지 없음’을 빗댄 말이다.
‘-스럽다’는 본래 ‘어떤 특성을 갖추지 못했지만 그런 특성이 좀 있음’을 나타낼 때 쓰인다. 아이한테 “너 참 어른스럽구나”라고 할 때 제격이다. 하지만 이미 어른인 사람한테는 ‘어른스럽다’고 하지 않고 ‘어른답다’라고 한다. ‘-답다’는 ‘실제로 어떤 자격이나 정도에 이르러 그런 특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20여 년 전에도 검사에게 ‘검사답다’라고 하는 게 ‘규범의 언어’였다. 하지만 당시 누리꾼들은 ‘검사스럽다’를 만들었다. ‘일탈의 언어’로 새말의 지평을 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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