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후 약 한 달 만에 400억원대 주식을 대량 매도해 논란을 빚고 사퇴했던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가 지금도 카카오페이에서 보수를 받는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고문은 일반적으로 회사에 기여한 공로가 큰 고위직 퇴직자에게 기업이 예우 및 자문을 위해 주는 직함이다. 카카오 그룹 안팎에서는 카카오에 대한 주주들의 불신을 키우고 주가 하락을 부추겼던 '먹튀 논란'의 당사자인 류 전 대표가 잔류 중이라는 데에 반발이 커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는 카카오의 공동체 대표 퇴임 프로그램에 따라 현재 카카오페이 고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 전 대표는 카카오페이 상장 직후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으로 취득한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워 회사 안팎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올 1월 자진 사퇴했다. 당시 정부와 국회에서는 '카카오페이 먹튀 방지법'이 논의될 만큼 여론이 악화했다.
카카오는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류 전 대표는 카카오 공동체 퇴임 프로그램에 따라 현재 카카오페이 고문으로 위촉돼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처우와 직책, 임기 등에 대해서는 "공시대상이 아닌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통상 국내 대기업은 예우가 필요한 고위직 퇴직자를 고문으로 위촉할 때 퇴임 당시 연봉의 70~80%와 차량, 비서, 사무실 등을 제공한다. 류 전 대표의 작년 기본급은 4억5900만원이다. 통상적인 계약대로라면 류 전 대표의 고문 급여는 3억5000만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임기는 보통 1~3년이다.
업계 "물의를 빚고 사퇴한 경우엔 고문 예우 제외"
실제 삼성·LG·현대·기아차 등 대기업 그룹을 비롯해 국내 기업들은 고위급 퇴직자 일부를 직급이나 공로, 향후 기여 가능성 등에 따라 상담역이나 자문, 고문으로 위촉해 예우하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류 전 대표가 고문으로 잔류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일 뿐 아니라 부적절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기업그룹 관계자는 "고문직을 제안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예우를 갖추는 차원의 의미도 크다"며 "아무리 공헌한 바가 큰 CEO(최고경영자)라도 회사에서 큰 물의를 일으키고 물러났다면 이런 예우에서 제외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위 교수는 "카카오가 류 전 대표에게 고문 계약을 제안했고, 류 전 대표가 이를 수락했다는 점 모두 카카오 내부에 도덕적 해이 문제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그 측근 인사들이 경영을 도맡는 카카오의 내부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 전 대표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신임하는 카카오맨으로 꼽힌다.
카카오 그룹사의 한 직원은 "직원들은 주가 하락으로 고통이 큰데, 류 전 대표는 회사에 큰 해악을 끼치고도 주식을 되사거나 퇴직금을 포기하기는커녕 지금도 보수를 받으며 고문 대우를 받고 있다는 데 큰 배신감을 느낀다"며 "김 의장의 '내 사람 챙기기'가 지나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장 직후 한 달여 만에 경영진이 집단으로 차익 실현에 나서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파장은 상당했다. 특히 경영진이 주식을 처분한 시점은 카카오페이의 코스피200 지수 편입 기대로 주가가 상승한 날이어서 소액 주주와 우리사주조합의 반발을 키웠다. 경영진이 주식을 대거 처분하기 전날인 작년 12월 9일 20만8500원이었던 카카오페이 주가는 한 달 후 14만8500원으로 29% 하락했다. 이날 카카오페이 주가는 4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작년 고점 대비 85% 가량 낮은 수준이다.
류 전 대표는 결국 매각 공시 한 달 후인 올해 1월 자진 사퇴했다. 이후 금융위원회는 '카카오 사태'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스톡옵션 행사를 통해 취득한 주식도 상장 후 6개월 간 매도를 제한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또 이전까지는 사후 공시됐던 상장사 내부자의 지분거래도 사전에 공시되도록 할 예정이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