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에 대한 질책성 발언을 쏟아냈다.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데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 제도 탓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통령실이 이날 공개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비공개 회의 영상에 따르면 회의 도중 마이크를 잡은 윤 대통령은 상당한 시간을 들여 경찰의 책임 회피성 보고를 질타했다. 윤 대통령은 “아마 초저녁부터 사람들이 모이고 6시34분에 첫 112 신고가 들어올 정도가 되면 (현장은) 거의 아비규환의 상황이 아니었겠느냐”며 “그 상황에서 경찰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느냐”고 말했다. 자유롭게 모인 인파를 통제할 권한이 없었다는 경찰 측 항변을 반박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 “정보역량이 뛰어난 우리 경찰이 왜 네 시간 동안 물끄러미 (상황을)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며 “(경찰들이) 현장에 나가 있었다. 112 신고가 안 들어와도 조치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걸 제도가 미비해 대응을 못 했다고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냐”고 몰아세웠다.
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참사 직후인 지난달 31일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도 개선을 지시하던 때와 확연하게 다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찰이 책임 회피성 보고를 한 것에 화가 난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회의엔 윤희근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도 참석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이례적으로 비공개회의에서 한 대통령 발언 영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가감 없이 회의 내용이 전달되도록 하라는 대통령의 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 첫머리 발언에서도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진상 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그(진상 규명)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 엄정히 그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또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에 대비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경찰 업무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에선 자체 진상 조사가 마무리되면서 윤 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 대한 인사 조치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날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야권이 제기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의 경질론에 선을 긋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책임 문제는 누가 얼마나 무슨 잘못을 했고, 권한에 맞춰 얼마나 책임을 물어야 할지 판단한 다음에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국민과 유가족에게 다시 사과했다. 윤 대통령은 “아들딸을 잃은 부모의 심경에 감히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마음이 무겁다”며 “유가족과 국민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좌동욱/김인엽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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