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5억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5년 만기일인 9일 전액 조기 상환을 결정했다. 지난 1일 공시를 통해 조기 상환권(콜옵션) 행사 대신 표면금리 인상(스텝업)을 선택하면서 국내 채권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신뢰를 깨뜨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흥국생명이 금융당국과 사전 협의한 사실이 드러나고 이어 정부 책임론으로 불똥이 옮겨붙자 부담을 느낀 흥국생명이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풀이된다.
흥국생명은 신종자본증권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4000억~5000억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발행하기로 했다. 흥국생명이 발행하는 RP는 국내 대형 은행 또는 보험사들이 매수했거나 매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흥국생명은 2017년 신종자본증권 발행 당시 콜옵션 환율을 행사 시점이 아니라 발행 시점으로 적용하기로 계약한 바 있다. 즉 발행 시점의 환율로 환산된 5571억원에 대해 RP 조달 및 자체 보유자금을 합쳐 우선 상환하겠다는 얘기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일단 RP를 통해 급한 불부터 끄고 나서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자본 확충에 나설 계획”이라며 “모회사인 태광산업뿐만 아니라 대한화섬, 티엔알 등 계열사들이 십시일반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가 2009년 우리은행 후순위채 이후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 만큼 금융시장에 미친 충격파도 컸다. 흥국생명뿐만 아니라 국내 은행과 보험사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가격이 일제히 하락했다. 내년 8월 조기 상환일이 도래하는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 가격은 지난 4일 기준 전주보다 8.9% 내렸다. 내년 10월 조기 상환될 예정인 우리은행 신종자본증권 가격도 11.1%, 2025년 9월 만기인 동양생명 신종자본증권 가격은 37.2% 하락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콜옵션 연기 결정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개입한 사실이 알려졌고 자연스럽게 당국 책임론이 일면서 흥국생명의 부담이 더욱 커졌을 것”이라며 “사태를 조기 수습하기 위해 당국 차원에서 정상 상환을 밀어붙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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