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밝혀지는 공시가 현실화의 허상 [더 머니이스트-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입력 2022-11-09 12:53   수정 2022-11-09 16:13

거래절벽 상황이 지속되면서 최근 집값이 공시가격에 육박하거나 그 이하로 떨어진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공시가격을 높게 책정된 지역의 경우 실거래가격과 공시가격이 역전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격 하락이 계속될 경우 내년에는 특정지역이 아닌 전국 대부분이 이런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부동산가격 공시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주택가격을 공시하는 목적은 주택시장의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이 과세 등의 업무와 관련하여 주택의 가격을 산정하는 경우에 그 기준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랍니다. 따라서 공시가격을 실거래가격과 맞추려는 노력은 허상과 같습니다. 공시가격은 실거래가격과 차이를 두면서 과세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사, 발표됩니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공시가 산정방식이 투명하지 않다는 겁니다.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정부 부처인 감사원에서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문재인정부 때인 2020년 5월 공시가격을 산정하면서 ‘용도지역’ 등 가격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빼놓고 계산했던 걸로 감사결과 드러났습니다. 이로 인해 특정 지역의 일부 공시가가 과대 또는 과소 평가됐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시가를 산정하기 위한 ‘표준부동산’ 개수도 적어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당시 국토부는 문제점을 바로잡아 정확하고 공정한 공시가를 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만 여전히 공시가 산정방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공시가가 잘못 산정될 경우 국민들이 납부해야 하는 재산세뿐만 아니라 각종 세금 및 국민건강보험료 등 각종 준 조세, 복지 수여자 결정에 잘못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겁니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공시가를 의도한 대로 결정하면 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그 피해가 갑니다. 거주하는 집의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실제 소득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세금을 많이 내라고 하면 안됩니다. 잘못하면 세금 때문에 이사를 가야한다던지 심하면 집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처하게 됩니다. 매년 재산세와 종부세를 납부하다보면 정부에 월세를 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는 재산세 등 보유세를 매길 때 취득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갑자기 집값이 올라도 매입한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큰 불편함이 없습니다. 보유세 인상률 또한 연 2% 이하로 책정되기에 우리처럼 매년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올리는 일은 없습니다. 조세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인 예측가능성을 우리는 누리지 못합니다. 무한정으로 올릴 수 있는 공시가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몇 년 후의 재무플랜마저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자산관리는 남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공시가를 정부마음대로 매기는데 따르는 폐해는 문재인정부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2020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예로 들면 고가 아파트 일수록 현실화율을 높인다는 방침으로 인해 시세 상승폭보다 공시가격이 더 많이 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서울 아파트의 공시가격 상승률은 평균 14.75%였습니다. 2007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강남구는 25.75%, 서초구 22.57%, 송파구 18.45%로 공시가격을 높인데 반해 강북구 4.1%, 은평구 5.51%로 비 강남권이 상대적으로 상승 폭이 낮았습니다. KB국민은행에 의하면 2020년 강북구와 은평구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각각 17.08%, 14.74%였으나, 강남구와 서초구는 9.39%, 7.33%에 그쳤습니다. 비 대칭적인 공시가 반영은 정부의 불순한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1월에 결정되는 공시가는 1년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1년 동안은 공시가가 변화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1년 동안 아파트 가격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공시가는 그대로입니다. 문재인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빚어진 문제이지만 윤석열정부 또한 방심하면 안됩니다. 곧 공시가격이 결정되는 시점이 다가옵니다. ‘현실화 1년 유예’라는 임시방편으로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잘못된 공시가 제도의 폐해는 부동산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부동산 정책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질서 있는 정상화만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공시가를 만든 목적은 실거래가격과 차이를 두어 세금이 과하게 부과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 큽니다. 진짜 부자들은 해외로 이민을 가거나 외국으로 사업장을 옮기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중산층과 서민들은 세금을 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애 소득주기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는 심각합니다. 40대초반때 소득이 피크를 보이는데 60세가 되지 않아 적자인생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이렇게 노후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나라에서 세금을 높이는 것은 노후대비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공시가 현실화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입장에 선 과세원칙을 세우는 것이 절실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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