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받지 않은 부재중 전화는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스토킹법이 없던 17년 전 판례를 적용해 그동안 변화한 국민 법 감정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인천지법 형사9단독(정희영 판사)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54)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3월26일부터 6월3일까지 전 연인 B씨에게 반복해서 전화를 걸어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A씨는 주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상대방에게 노출되지 않는 '발신 표시 제한' 기능을 이용해 전화를 걸었고, 영상 통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루에 4시간 동안 10차례 연속으로 전화를 건 적도 있었지만, 법원은 계속 전화했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아 벨 소리만 울렸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17년 전인 2005년 선고한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당시는 스토킹법이 없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반복된 전화 등 스토킹과 유사한 행위를 처벌했다.
당시 대법원은 "상대방 전화기에 울리는 '벨 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송신된 음향이 아니다"라면서 "반복된 벨 소리로 상대방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줬더라도 법 위반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인천지법 형사9단독은 이 대법원 판례에 더해 "부재중 전화가 표시됐더라도 이는 휴대전화 자체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다"면서 "A씨가 B씨에게 도달한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해석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이 스토킹법과 유사한 법 조항의 오래된 판례에 근거한 탓에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한 스토킹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보통 스토킹 피해자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는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끼기 때문인데, 이번 판결은 '전화 스토킹'을 처벌하려면 피해자가 전화를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그동안 스토킹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해 관련 법까지 만든 지금의 국민 법 감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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