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사법), 방송통신위원회 규제(행정)에 이어 국회(입법)까지 확대된 이 전장은 전 세계 규제기관과 입법기관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런 이해충돌의 현장에 시민단체가 특정 글로벌 CP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필자는 이 시민단체가 설립 초기에 개최한 세미나에서 구글이 후원자로 적혀 있는 플래카드를 보며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래카드와 팸플릿의 ‘후원사’란에서 구글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 구글이 이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서명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나섰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필자는 이를 구글의 ‘커밍아웃’ 사건으로 본다. 도대체 어떤 상황 변화가 구글로 하여금 그 실체를 드러내게 했을까?
한마디로 다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회는 지난 몇 년 사이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을 통과시키는 등 입법을 통해 빅테크를 견제해왔고 이는 유럽연합(EU)과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엄청난 환영과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구글과 애플은 이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따르지 않으며 사실상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법은 빅테크의 과도한 집중 현상을 억제하려는 유럽연합 등 다른 나라의 입법에 영향을 줬고 이는 구글에 적잖은 부담이 되었으리라. 그 와중에 또 망 이용료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려고 하니 플래카드에서 지웠던 자사 이름을 드러내고 전면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구글의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의 지향점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저작물 등 콘텐츠의 자유로운 이용을 위해 저작권자 또는 저작권단체와, 자유로운 인터넷 이용을 위해 방통위 등 정부기관과, 또 과도한 망 이용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사와 싸워 온 시민단체의 노력은 충분히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데 저작권자(단체)나 통신사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빅테크, 글로벌 CP, 대규모 플랫폼 기업이 지배할 미래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일상의 삶을 어떻게 좌지우지할 것인지를 예상해본다면 지금의 활동 방향이 이 시민단체의 지향점으로서 맞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발생한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로 일상이 멈춰 섰던 것은 빅테크나 글로벌 CP가 지배하는 현재와 미래 사회에서 발생할 비슷한 사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거대한 선박을 내항에 접안시키는 도선사는 접안하기 훨씬 전부터 속도를 줄이기 위해 심지어 후진 기어를 넣기도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짝 부딪혀도 도크가 박살나기 때문이다. 배고팠던 기억이 과식을 낳는다. 망 이용료 법안 논의에서 기금으로 해결하자는 방안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망 이용료 법 반대서명 운동이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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