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정밀화학은 이날 롯데건설에 3000억원을 빌려주기로 했다. 대여금 만기는 3개월이며 조달금리는 연 7.65%다. 롯데건설은 대여금에 대한 담보로 보유한 부동산 일부를 롯데정밀화학에 맡기기로 했다. 롯데정밀화학 관계자는 “투자회사인 롯데이네오스화학으로부터 최근 배당금을 받으면서 현금성 자산이 현재 6000억원가량 된다”며 “롯데건설 대여금으로 57억원의 이자 수입이 생긴다는 점을 감안해 자산운용 차원에서 대여금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롯데정밀화학의 모회사인 롯데케미칼도 지난달 20일 롯데건설에 5000억원을 긴급 대여했다. 만기는 3개월, 금리는 연 6.39%다. 오는 18일엔 롯데건설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876억원을 출자한다. 롯데케미칼과 롯데정밀화학이 한 달간 롯데건설에 지원하는 자금은 총 8876억원이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현금 지원에 나선 것은 롯데건설 재무 여건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주로 3개월 만기로 기업어음(CP)과 브리지론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구해왔다. 브리지론은 본격적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조달하기 전에 토지 매입이나 인허가, 시공사 보증에 필요한 자금 대출을 뜻한다.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상황이 바뀌었다. PF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단기자금 조달 시장도 ‘돈맥경화’ 조짐이 뚜렷해졌다. 단기자금 시장 대표금리로 통하는 A1 등급 기업어음(CP) 금리는 이날 오전에 0.02%포인트 오른 연 5.0%에 거래되면서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롯데건설이 치솟는 금리에 자금 재조달(차환)에 어려움을 겪자 계열사들이 팔을 걷어붙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룹 계열사 위기를 막기 위해 ‘구원 등판’에 나선 롯데케미칼·롯데정밀화학이 그룹의 간판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롯데그룹은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등 유통 계열사를 중심으로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화학 계열사의 입지가 더 단단해졌다. 롯데케미칼·롯데정밀화학의 지난해 영업이익(1조7801억원)만 봐도 롯데쇼핑·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 등의 영업이익(4983억원)을 압도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현금 창출력과 자산 규모 등에서 화학 계열사가 몇 년 전부터 유통 계열사를 큰 폭 앞질렀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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