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성균관대에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근무했고, 서울대에는 2010년부터 재직하고 있다. 두 대학의 물리학과는 처음부터 두뇌한국 사업의 대단위 대학원에 선정돼 물리학과 전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따라서 지난 20년 동안 이 사업의 가장 큰 수혜 기관에서 재직했다.
그럼에도 구조적 문제로 인해 늘 대학원 학생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성균관대를 떠난 2010년에는 대학원생 2명만으로 연구실을 운영했다. 이 같은 문제는 당시 성균관대 물리학과에서는 대학원 신입생들이 원하는 연구실에 가는 인원에 제한이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제도 또한 문제가 있다. 먼저, 연구실의 연구 실적과 상관없이 모든 연구실에 균등하게 학생들을 배정하다보니, 해당 연구실의 연구 실적과 학생 배정은 무관하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을 일률적으로 배정해 생기는 역효과다. 원하는 분야의 연구실에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다.
두뇌한국 사업은 연구 잘하는 연구실에서 더 좋은 연구를 하고, 또 양질의 학생들을 교육해서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 기본적인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고착화된 구조적인 대학 서열화 문제를 성찰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학의 서열화 가속화와 대학원생의 수도권 집중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이 제도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연구자 개인이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도 두뇌한국 사업이라는 이상한 틀, 즉 단 구성과 팀 구성에 해당되지 못하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대학원 육성사업의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뇌한국 사업 대상 대학이 아니면 교수가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 연구를 잘해도 제도적으로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 결국 애초 의도와는 달리 현 BK21은 지방 거점 국립대 및 지방 사립대의 붕괴를 촉진시키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대학원 육성사업의 기본 전제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탁월한 연구는 무엇보다 연구 일선에서 지도하는 교수의 역량과 의지가 중요하다. 좋은 대학에 있다고 연구를 잘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좋은 학생들이 한국 대학의 구조적 문제로 특정 대학에 몰려간다는 자명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결과다.
지금 대한민국은 인구절벽에 직면하고 있고,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대학원 육성사업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연구에는 연구비도, 대학원생 수도 모두 적정 규모가 있는데, 현재의 BK21 사업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대학원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 역량과 의지가 있지만, 대학원 육성사업의 구조적 문제의 피해로 연구를 그만두는 그 많은 전국 대학에 있는 교수들은 대한민국이 활용해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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