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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콘트라바스>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출세작이다. <향수> <좀머씨 이야기>를 펴낸 세계적인 작가 쥐스킨트도 이 작품을 내기 전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무명작가였다. 1984년 스위스에서 <콘트라바스>를 발표한 뒤 유명 작가 대열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독일어권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희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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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쥐스킨트가 발표한 지 9년 만인 1993년 <콘트라베이스>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선보였다가 2020년 리뉴얼판이 나올 때 <콘트라바스>로 제목이 바뀌었다. 출판사의 변은 ‘독일어권에서 콘트라바스로 부르는 악기를 영어권에서 더블베이스로 부르다 보니 정체불명의 단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국어사전에 표준어로 자리하고 있는 데다 워낙 익숙한지라 본문에서는 ‘콘트라베이스’로 쓰는 게 자연스러울 듯하다.
소품은 딱 하나, 콘트라베이스뿐이지만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데 놀라고, 콘트라베이스에 대입한 인생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울러 작품을 읽는 동안 자신의 일을 깊이있게 논할 힘을 기르게 될지도 모른다. 사소한 것이라도 집요하게 추적해 제법 의미있는 형태로 만드는 습관이 생길 수도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밀도 있게 쌓아올린 쥐스킨트의 놀라운 솜씨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음악가와 음악은 실제 인물과 그들이 작곡한 작품이다. 쥐스킨트가 음악가들을 시니컬하게 재평가하는 내용도 흥미롭다.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히는 모차르트도 그의 입담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쥐스킨트가 소개하는 콘트라베이스 연주곡을 들으며 ‘주인공 남자, 그 남자가 다루는 악기, 그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상상하면 이야기가 더욱 실감 날 것이다.
저음을 담당하는 콘트라베이스가 가장 중추적인 악기임에도 오케스트라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것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콘트라베이스를 무시하고 소리에서 모양까지 다 험담거리로 만드는 심리는 뭘까. 매사 비교와 비난을 일삼는 남자의 뛰어난 입담에 귀 기울이다 보면 악기에 따라, 같은 악기여도 연주가에 따라 위치와 달라지는 ‘오케스트라 세상’과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푸념에 동의하게 된다.
‘평생직장’으로 인해 밀폐공포증에 시달리면서도 박차고 나갈 용기가 없는 남자, 그가 오케스트라에서 쫓겨나는 방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소프라노 세라를 이용할 궁리를 하는 게 이야기의 끝이다. 중년의 유명 음악가와 비싼 식당을 매일 드나드는 세라를 짝사랑하느라 환영에 시달릴 정도로 괴로운 이 남자는 과연 오케스트라와 콘트라베이스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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