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참된 애도, 기업의 역할

입력 2022-11-13 17:06   수정 2022-11-13 23:59

이토록 황망한 참사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재미있게 놀다 오라는, 너무 늦지는 말라는 일상적인 말들이 그들에게 건넨 남은 이들의 마지막 인사였을 것입니다. 곧 들어가니 염려 말라는, 이따 보자 사랑한다는 눈물겨운 대화는 돌이킬 수 없는 메아리로 영원히 떠돌 것입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너무 바빠 밤늦게야 들어오는 사람, 비행기 타고 다니느라 좀처럼 만나기 힘든 누군가에 불과했습니다. 살아남으려면 그래야만 했습니다. 회사가 커가는 게 좋았고, 공장 바닥에서 직원들과 기울이는 소주 한잔이 행복했습니다. 경제가 좋아지면 신명이 더했고, 해외 언론에서 우리 산업을 칭찬할 때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바이어 앞에서 두 시간씩 선 채로 지청구를 들어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공동체에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보태고 있다는 보람이면 충분했습니다. 여전히 경영 일선에 서 있는 백발의 동료 중견기업인 모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업은 모든 국부 창출의 원천입니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옵니다. 기업인은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입니다. 부에 대한 탐욕 따위에 인생을 바치는 기업인은 없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기업인이 없지 않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인들은 도전하고 혁신해서 부를 창출하는 데 특화된 사람들일 뿐입니다. 가장 잘하는 일을 열심히 수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의 물적 토대를 다지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서로를 지킬 수는 없습니다. 성장이 전부일 수 없지만, 성장은 다시금 안전을 포함한 많은 것의 가능성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될 뿐입니다. 2011년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됐던 183개 기업이 2021년에는 멀리 밀려났거나, 사라졌습니다. 기술 변화와 산업 재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도전과 혁신의 주체인 기업의 활력을 높이는 진정한 변화가 시급합니다. 정부가 끌고 민간이 동참한 과거의 패러다임을 넘어,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인 변혁의 공간을 열어야 합니다. 정부의 민간 주도 성장 선언이 시대의 변화에 적중한 까닭입니다. 11월 7일 제8회 중견기업인의 날 기념식에 역대 최초로 대통령이 참석한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기업의 활력을 높이는 것이 성장의 기반을 정초하는 작업이라는 공감대를 확산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자녀이고, 대부분은 누군가의 부모입니다. 하릴없이 스러진 수많은 청춘의 안타까운 미래 앞에서, 자기만 옳다는 어른들의 악다구니는 무용할 뿐입니다. 공동체의 안정과 지속을 위해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힘겹지만 추스르고, 서로 붙들어 일으키는 데 사회적 역량을 결집해야 합니다. 참된 애도의 형식은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은 기업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기업의 경쟁력은 국가의 경쟁력이고, 청년들의 내일이고, 후대의 역사입니다. 보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다져야 합니다. 어제보다 나은 풍요의 바탕 위에서 신뢰와 연대가 들꽃처럼 피어나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공기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거웠고, 언어는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미안하다고 간신히, 속으로 말했습니다. 어른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부끄러워해야 마땅합니다.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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