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사라진 中 광군제

입력 2022-11-14 17:53   수정 2022-11-14 23:54

중국 행정부인 국무원이 코로나19 방역을 완화하는 지침을 지난 11일 내놨다. 3년 가까이 이어온 ‘제로 코로나’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차밀접’(밀접접촉자의 밀접접촉자)을 관리에서 제외하겠다는 내용은 그동안의 통제에 비춰보면 파격적이다. 중국에선 감염자도 아닌 밀접접촉자와 동선이 겹치는 차밀접과 그 동거인까지 격리시키는 게 일상이었다. 정상적 경제 활동이 이뤄질 수 없었다.

베이징도 국무원 지침에 따른 방역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의 통제는 여전하다. 발표 당일,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건당국은 그 학생과 같은 4층에서 수업받는 학생 전원을 밀접접촉자로 지정하고 시설에 수용했다. 차밀접이 없어지자 밀접의 범위를 대폭 늘렸다.
현장은 아직 '제로 코로나'
당국은 또 같은 학교 1~3층의 학생 전원과 그 가족에까지 3일의 자가격리를 요구했다. 중앙의 지침에 없는 차밀접 관리도 여전하다는 얘기다. 이런 사례는 중국 전역에서 속출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제로 코로나를 시진핑 주석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제시해 왔다. 하지만 제로 코로나의 실상이 시 주석의 3연임을 정당화하는 명분이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제 제로 코로나는 목적을 다한 정책이 됐다. 지속된 통제와 불황에 민심은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시 주석 측근으로 구성된 새 최고 지도부(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가 첫 회의에서 “생산과 생활 질서를 빠르게 정상화한다”고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장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도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이다. 제로 코로나 기조 아래 수많은 지방 관리가 방역 실패로 옷을 벗었다. 지도부가 통제를 완화하는 지침을 내놨지만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다는 의심이 크다. 상당수 중국 국민도 ‘통제 완화 시늉만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추락한 중국 기업 신뢰도
중국은 당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던 나라다. 일당 독재를 70년 넘게 이어온 공산당은 그만큼 장기 계획을 세우기도, 수행하기도 유리했다. 정책 실행력에 대한 중국 국민의 믿음은 체제를 유지하는 배경이 됐다.

하지만 3년간의 무자비한 제로 코로나는 이런 신뢰를 무너뜨렸다. ‘인민의 최소한 삶을 보장한다’는 약속은 곳곳에서 무너졌다. ‘정밀 방역’ 방침을 하루아침에 뒤집고 전면 봉쇄로 전환한 상하이 사례는 결정타였다. 해외 바이어나 투자자들도 중국을 떠났다.

방역 완화 방침이 나온 지난 11일은 중국 최대 할인 행사인 ‘쌍십일’(11월 11일, 광군제) 당일이었다. 그런데 알리바바와 징둥닷컴, 핀둬둬 등 주요 유통업체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올해 쌍십일 매출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매출 비공개는 2009년 이벤트 시작 이후 처음이다.

이들은 뉴욕과 홍콩 등 글로벌 증시 상장사다. 핵심 지표를 내놓지 않은 배경엔 당국의 ‘지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기업과 경제에 대한 외부 평가는 더 떨어졌다. 중국 지도부에게 국내외 신뢰도를 높일 생각은 과연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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