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33㎡(약 10평) 남짓의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 씨(31·여)는 최근 커피 값 인상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박 씨는 올 초 커피 값을 메뉴별로 300~400원가량 인상했다. 박 씨네 카페의 커피 값은 아메리카노가 3600원, 카페라떼가 3900원 등으로 형성돼 있다. 최근에 우윳 값이 올라 라떼 등 우유가 재료인 음료 가격을 몇 백원씩 올리고 싶지만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내세우던 카페라 소비자 저항이 클 것으로 예상돼서다.
박 씨는 ”라떼 등 기본 커피류가 4000원을 넘어서면 고객들이 저렴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측면이 있다“며 ”최대한 가격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지만 물가는 뛰고 손님은 점점 줄어드니 버티기가 어렵다“고 푸념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우윳값 인상에 따라 빵·아이스크림·커피 등 우유를 재료로 쓰는 제품들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이 가시화하고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오는 17일부터 흰우유 1리터(ℓ)짜리 제품 출고가를 6.6% 올리는 등 우유 제품군 가격을 평균 6% 인상한다고 밝혔다. 매일유업 역시 17일부터 900㎖ 흰우유 제품 출고가를 8.2%, 가공유 가격을 9.8% 올리는 등 우윳값을 평균 9% 인상하기로 했다. 남양유업도 같은 날부터 흰우유 제품 출고가를 평균 8%, 가공유 제품은 평균 7% 인상하기로 했고, 동원에프앤비(F&B) 역시 30여종의 우유제품 가격을 평균 5% 올린다.
이번 가격 인상에 따라 마트 판매가 기준 각 업체의 흰우유 대표 상품 가격은 2800원대 중후반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렸던 ‘3000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우유를 원료로 한 버터, 생크림 등도 줄줄이 가격이 오르면서 유제품을 쓰는 자영업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흰 우유 가격 상승은 특히 커피 전문점 음료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업계 진단이다. 라떼나 카푸치노 등 우유가 직접 들어가는 제품의 경우 곧바로 비용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유 가격이 한 차례 오르자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등 커피전문점이 줄줄이 가격을 올린 바 있다. 통상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카페라떼의 경우 전체 음료량의 65~85%가량이 우유로 이뤄져 있다.
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올해 내내 커피 값이 많이 올랐다는 인식이 있어 당분간 가격 인상은 자제할 계획이지만 우유를 비롯해 원재료 등의 가격이 워낙 올라 특별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당장 대형 베이커리 업체나 커피전문점은 우유 공급선을 다변화하거나 우유 대신 두유나 식물성 대체 우유 비중을 늘리는 등 메뉴를 조정해 버텨보겠다는 분위기지만 개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들은 이 마저도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소규모 업장일수록 원가 부담 비중이 커서 원재료를 다변화하기 어렵고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산 우유보다 값이 저렴한 수입산 멸균 우유로 대체하려는 자영업자들도 늘고 있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우유와 맛의 차이가 나 이마저도 녹록치는 않은 상황이다.
한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아메리카노·에스프레소를 빼면 거의 모든 제품에 우유가 쓰일 정도로 중요한데 분유 등 대체재를 쓰면 금방 맛이 달라져 손님들의 항의가 쏟아진다"며 ”원재료를 바꾸기가 쉽지 않고 값을 올리지 못하면 아르바이트생을 줄이는 등 비용 절감을 해서 버티는 식이 많다“고 전했다.
전방위적 물가 상승으로 동네 카페들부터 타격을 받는 셈이다. 커피 원두나 우유 뿐 아니라 음료 제조에 필요한 재료, 테이크아웃 전용 플라스틱 컵 등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고객들의 가격 저항이 커서 대부분 원가 부담을 떠안는 경우가 많다. 비용은 느는데 매출은 줄어 폐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시에서만 폐업한 카페의 수가 1240여곳에 달한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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