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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베토벤 작품을 들고 한국 무대에 오르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비트의 첫 내한 독주회는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첫 곡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부제로 두는 베토벤 소나타 17번이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흘러나오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이름 앞에 왜 ‘베토벤 전문가’란 수식어가 붙었는지 곧바로 알게 된다.
압권은 1악장에서 저음 파트는 무겁게, 고음 부분은 빠른 터치로 명료하게 연주한 대목이었다. 어두운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얼마나 적절하게 표현했는지, 마치 영화나 연극을 볼 때처럼 긴장했다. 3악장은 ‘출제자의 의도’대로 연주했다. 주선율에 힘을 주면서도 이를 꾸미는 주변음은 아주 가볍게 치면서 선율을 조화롭게 연주했다. 그 덕분에 베토벤의 작곡 의도가 그대로 청중에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레비트의 손은 조금씩 급해졌다. 소나타 8번 ‘비창’부터였다. 베토벤이 처음으로 자신의 소나타에 표제를 붙인 이 곡의 관건은 ‘처연한 선율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빠른 손놀림 탓에 처연해야 할 선율이 음미할 새도 없이 귀를 스쳐 지나갔다.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야 할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에서도 그랬다. 가속이 붙으면서 왼손과 오른손의 합이 어긋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첫 곡을 연주할 때 그렇게 멋들어지게 선율을 쌓아나가던 그 피아니스트가 맞나 싶었다.
기교적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레비트의 손가락 움직임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액셀러레이터를 조금만 덜 밟았다면, 베토벤 특유의 고독함과 장엄함이 살아나는 역대급 연주가 됐을 것이란 생각에.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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