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에너지 안보의 핵심 동반자다.”(윤석열 대통령) “사우디 비전 2030 실현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자.”(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윤석열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간 17일 회담은 양국 경제 협력을 에너지와 방산을 포함하는 경제 안보 분야로 확대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향후 석유산업을 대체할 신산업 육성에 나선 사우디가 한국을 협력의 핵심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양국은 경제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전략파트너십위원회’까지 신설하기로 해 주목된다.
회담은 윤 대통령이 열흘 전 입주한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열렸다. 빈 살만 왕세자가 ‘첫 손님’으로 초대됐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양국 장관 간 실무 회담이 진행되는 사이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통역만 대동하고 정원을 산보하며 환담을 나눴다”며 “빈 살만 왕세자는 첫 만남이 대통령과 가족의 진심이 머무는 곳에서 이뤄진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2030년 엑스포를 두고 경쟁하는 국가다. 이런 상황에도 윤 대통령이 정상회담급 환대를 한 이유는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네옴시티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관심 때문이다. 네옴시티는 홍해와 인접한 사우디 북서부 사막지대에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신도시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5000억달러(약 650조원)를 투자하기 위한 사업 발주가 잇따르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이 주목받은 것도 국내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에너지 분야에서는 수소에너지 개발, 탄소 포집 기술, 소형원자로(SMR) 개발, 원전 인력 양성과 관련한 협력을, 방산 분야에서는 사우디 국방 역량 강화를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협력을 각각 희망했다”고 전했다.
수소에너지, SMR 개발, 방산 등에서의 협력은 경제뿐 아니라 군사 및 안보와도 연계된 영역이다. 개별 기업뿐 아니라 정부 간 협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건설과 교통 인프라를 중심으로 협력 관계를 맺어온 한국으로서는 새로운 블루오션이 열리는 것이다. 이날 양국 정부가 발표한 총 26개 40조원 규모의 양해각서(MOU)엔 SMR과 방산 분야는 포함돼 있지 않다. 대통령실은 “양측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석유 가격 안정 등의 문제로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인 사우디가 한국과의 관계를 더 밀접하게 가져가려 한다는 관측도 있다. 그동안 사우디가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미국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방산 수출이 본격화하려면 미국 정부의 양해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SMR과 같은 원전 수출도 미국과 사전 협의가 필요한 분야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양국 경제 협력은 한국뿐 아니라 사우디 측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사우디는)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도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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