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와 3위 업체 UMC를 보유한 반도체 강국이다. 애플, 퀄컴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이 TSMC에 반도체 생산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등 경쟁국들이 최근 반도체 투자를 강화하면서 내부적으론 ‘언제 주도권을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었다. 대만 정부가 지난 17일 반도체 제조사 등 기술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한 이유다. 첨단장비 투자는 추가 5% 세액공제가 제공된다.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 장관은 세액공제 확대는 대만에 R&D 센터나 관련 자회사를 설립한 외국 기업에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미국 의회는 반도체산업 육성에 향후 5년간 2800억달러(약 375조원)를 투입하는 걸 핵심으로 하는 ‘반도체 및 과학법’을 지난 7월 통과시켰다. 이 법에는 반도체 R&D 분야 등에 총 520억달러(약 70조원)를 투입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 담겼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대폭 끌어올리기 위해 인텔을 비롯해 삼성전자, TSMC 등의 반도체 공장을 미 본토에 유치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월 450억유로(약 62조원)에 달하는 ‘유럽 반도체 법안’을 제안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자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1조3000억엔(약 12조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도요타와 소니 등 자국 기업 8곳이 함께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자, 정부가 700억엔(약 65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2015년 세웠다. 이를 위해 10년간 최대 1조위안(약 187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상태다.
양향자 무소속 국회의원이 8월 ‘반도체특별법’으로 불리는 법 개정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지만, 3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이 법에는 반도체 시설투자 시 대기업에 20%, 중견기업에 25%, 중소기업에 30%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방안이 담겼다. 반도체 클러스터 등 특화단지를 조성할 때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학과 증원을 허용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며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 차원의 반도체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여당 지도부의 요구도 거절했다. 양 의원은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반대는 나라의 미래를 땅에 묻는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업계에선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경쟁사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뛰어왔는데, 이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S&P캐피털IQ 자료를 인용해 낸 자료를 보면 2018~2021년(평균) 한국 반도체 기업의 법인세 부담률(법인세 비용/법인세차감전순이익)은 26.9%다. 대만(12.1%), 미국(13.0%), 일본(22.3%)보다 높다.
최근 한국 반도체산업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92억3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7.4% 줄었다. 월간 기준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반도체 수출액이 100억달러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안방’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3분기 한국의 수입 반도체 공급지수는 311.8로 전년 동기 대비 50.8% 상승했고, 같은 기간 국산 반도체 잠정공급지수는 8.9% 높아졌다. 국내 제조기업들이 제품을 만들 때 해외에서 들여온 반도체를 더 많이 썼다는 의미다.
도병욱/허세민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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