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보석 가게에서 팔리지 않는 터키옥이 있었다. 손님들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진열대 중심부에 배치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판매는 여전히 부진했다. 고심하던 사장은 출장 가기 전날 밤 간단하게 흘려 쓴 메모를 지배인에게 남겼다. “진열된 터키옥을 모두 반값에 처분하세요.”
며칠 뒤 출장을 다녀온 사장은 깜짝 놀랐다. 반값(1/2)에 판매하라는 글씨를 지배인이 잘못 읽고는 2배(X2) 가격으로 책정한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장이 지배인을 야단치려는 순간, 터키옥이 모두 팔렸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사장은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것은 애리조나 주립대 치알디니 교수가 그의 저서 ‘설득의 심리학’ 도입부에서 소개하는 사례다.
이 사례를 이해하기 위해서 구매와 관련된 소비자 심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소비자들의 구매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가격을 결정하는 방법을 심리적 가격결정(psychological pricing)이라 한다. 단순히 상품의 경제적 가치보다는 가격이 갖는 심리적 효과를 고려해 가격을 결정한다. 가격표에 표시된 가격이 소비자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가 중요하다. 대표적인 유형을 몇 가지 살펴 보자.
‘회사가 저 만큼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높은 가격은 고급 이미지를 부여하고 소비자가 인식하는 가치를 높여 줄 수 있다.
도입부에서 소개했던 터키옥 사례로 돌아가 보자. 여러분이 결혼 20주년 기념일을 맞아 배우자에게 보석을 선물하려고 보석 가게를 방문했다고 가정해 보자. 보석은 일반 소비자가 품질을 평가하기 어려운 대표적 상품이다. 평가에 필요한 정보도 별로 없다.
과연 어떤 보석이 좋은 것인가? 색이 화려한 것? 단단한 것? 크기가 큰 것? 판단하기 어렵다. 매장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보석 가격표에 나와있는 가격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석 품질을 평가할 때 가격이 중요한, 아니 유일한 기준이 된다.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지배인의 실수로 인해 가격이 2배나 오른 터키옥이 좋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팔리지 않던 보석이 매진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명품 시계, 고급 자동차, 특급 호텔, 화장품, 의류 및 스포츠 용품 업체들이 위신 가격을 책정하는 경향이 많다. 위신 가격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려면, 제조업체나 소매점, 상품, 브랜드 등의 명성이 높아야 한다. 예를 들어 롤렉스, 벤틀리, 포시즌스, 나이키 등을 생각해 보라. 단순히 상품의 기능을 반영한 가격이 아니다. 상품이 주는 심리적 가치와 상징적 가치를 반영한 가격이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아니, 높은 가격이기 때문에 지갑을 연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를 위한 배타적인 상품이라 더 끌리는 것이다.
온·오프라인 유통의 대전환 시기에 유독 우리나라 백화점만 건재한 이유도 고객의 심리를 이용한 백화점의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백화점 안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본질적으로는 온라인이나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상품들과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 게다가 같은 등급의 소고기도 점포에 따라 가격 차등을 두어 판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비싸게 파는 소고기의 판매율이 더 높기도 하다. 비쌀수록 좋은 것이라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위신 가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략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높은 가격에 걸맞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일관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브랜드 이미지를 해칠 수 있는 가격 할인은 가급적 피한다.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공급을 적절하게 조절해 상품의 희소성이나 배타성을 유지한다.
궁극적으로 고급 상품이라면 이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객의 기대를 충족하며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 예컨대 애플의 경우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지만 하나 같이 경쟁사보다 높은 가격이다. 독특한 상품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한다. 소비자들이 일종의 성지처럼 방문하는 애플 스토어는 최고의 체험을 제공하며 상징적 가치를 창출한다.
다른 예로 10,000원과 9,900원을 살펴 보자. 10,000원은 5자리수이지만, 9,900원은 4자리수다. 가격이 한 자리 수 줄어 드니 심리적으로 훨씬 더 싸게 느껴질 수 있다.
단수 가격은 미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다. 보통 가격의 끝 자리에 ‘홀수(odd number)’를 쓴다. 영어 명칭으로 홀수 가격(odd pricing)을 사용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예컨대 50달러보다는 49.99달러를 접할 기회가 많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소비자들은 9자로 끝나는 가격을 접하면 그 상품이 다른 상품보다 싸다고 인식하고 구매할 의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9자로 끝나는 가격을 보면 해당 상품이 할인 판매 중이라고 판단하고, 다른 상품들을 둘러 봐야 이 가격보다 더 싼 것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너도 나도 9라는 숫자를 사용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이제는 9라는 숫자에 익숙해졌다. 그러자 기업들은 더 작은 숫자인 8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9,900원이 아니라 9,800원. 물론 8이라는 숫자는 홀수가 아니다. 그러나 기본 원리는 같기 때문에 단수 가격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다시 7, 5 등으로 이어져 왔다.
그런데 단수 가격이 너무 많이 사용되다 보니 이를 얄팍한 상술로 인식하며 짜증을 내는 소비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7,900원이나 8,000원이 실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자 이제 다시 정확하게 떨어지는 단위를 사용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다이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성비를 강조하지만 0으로 끝나는 가격을 사용한다. 소비자의 불필요한 반감은 줄이며 신뢰를 얻으려는 시도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가격 인상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기업은 가격을 쉽사리 올리지 못한다.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는 일반적으로 상품의 양이 변하는 것보다 가격이 변하는 것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특히 관습 가격이 통용되는 상품의 경우는 가격 변화에 훨씬 민감하다. 따라서 단위제조원가를 유지하기 위해 상품의 크기나 용량을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하곤 한다.
가격은 유지하면서 상품 크기나 용량을 줄여 사실상 값을 올리는 효과를 거두는 것을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라고 부른다. ‘줄어들다’라는 의미의 ‘슈링크(shrink)’와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미국 최대 초콜릿 제조업체인 허쉬(Hershey)도 원자재 원가가 올라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을 구사했다. 초콜릿은 관습 가격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상품이다. 따라서 상품 가격을 인상하기보다는 상품 용량을 줄여 소비자들의 직접적인 저항을 낮추려고 한 것이다.
항상 소비자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한다. 가장 객관적으로 보이는 가격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가격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면 소비자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때로는 비싸 보이게, 때로는 값싸 보이게, 때로는 남들과 똑같아 보이게 해야 한다.<h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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