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전까지 강한 매파 성향으로 일관했던 Fed가 피벗을 시사한 것은 첫 금리 인상 때부터 안고 있던 문제에 기인한다. 작년 4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쇼크’라 불릴 정도로 높게 나왔는데도 Fed는 ‘일시적’이라 오판해 인플레이션을 자초했다. 이 때문에 인플레만을 잡기 위해 ‘볼커 모멘텀’으로 대처해왔다.
볼커 모멘텀은 인플레가 잡히는 가닥만 보이면 그 명분이 급속히 약화된다. 미국의 CPI 상승률이 지난 6월 9.1%를 정점으로 안정되기 시작해 10월에는 7.7%로 크게 둔화됐다. Fed의 인플레 목표치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나 통화정책의 시차가 9개월에서 1년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는 것도 피벗 시사 요인이다. Fed가 경기예측 기법으로 가장 신뢰하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그 격차도 70bp(1bp=0.01%포인트, 2년물과 10년물 기준) 이상 벌어졌다. 1970년 이후 미국 경기순환 사이클을 보면 최근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면 예외 없이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정책적으로도 Fed가 인플레만을 잡기 위해 더 이상 주력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외적으로 1년 전부터 강달러 유도를 통한 인플레 수출 정책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대내적으로도 중간선거 이후 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미국 재무부의 바이 백(buy back)을 통한 유동성 공급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피벗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알려져 있다. 피벗 시사 이후 굳어진 최고금리 연 5%(현재 연 4%)를 토대로 추진 경로를 예상해 보면 올해 마지막 회의에서는 0.5%포인트, 내년 1월과 3월 회의에서 각각 0.25%포인트를 올리는 시나리오다. 구체화 여부는 12월 회의에서 발표하는 점도표에서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Fed 인사들의 금리 인상 어록을 감안하면 당장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날로 악화하는 미국 국채시장의 신용경색을 푸는 직접적인 방안도 못 된다. 이 때문에 양적긴축(QT)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이 피벗의 차선책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지난 8월 잭슨홀 회의에서 논의됐던 인플레 타기팅선을 상향 조정하면 금리 인상과 QT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제3의 피벗 대안이 될 수 있다. Fed가 인플레 잡기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상황에서 인플레 타기팅선을 현재 2%에서 4%로 올리면 테일러 준칙에 따른 적정 금리를 같은 폭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채의 화폐화(bond monetization)’가 거론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부채의 화폐화란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국채를 Fed가 매입해 신용경색도 풀고 시장금리를 내리는 방안이다. 하지만 인플레가 잡히지 않고 국가채무가 위험수위에 도달한 여건에서는 재무부, Fed 모두 자충수가 될 확률이 높다.
통화정책 추진 여건이 다른데도 미국식 볼커 모멘텀을 추진해온 한국은행도 피벗에 나서야 한다. 작년 8월 이후 1년3개월 넘는 기간 동안 금리를 무려 연 2.75%포인트 올렸는데도 지난 10월 CPI 상승률은 5.7%로 오히려 더 올랐다. 공급 측 요인이 강한 여건에서 주로 총수요 대책인 금리 인상은 인플레를 잡는 데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자 이탈 방지 목적도 빗나갔다. 지난 9월 Fed 회의 이후 한·미 간 금리가 1%포인트 역전됐는데도 외국인 자금이 무려 5조원 이상 들어왔다. 가계부채를 줄여 금융 건전성을 도모하려는 의도는 오히려 젊은 세대, 소상공인을 비롯한 경제 취약 계층을 거리로 내몰면서 극단적 선택 등 사회병리현상을 급증시켰다.
한은은 인플레를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일지 모르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인플레뿐만 아니라 경기, 고용 등 모든 면이 안정돼야 한다. 경기, 금리, 인플레 간 트릴레마 국면에 놓여 있는 한은의 보다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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