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파친코>로 유명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54·사진)은 ‘왜 한국 이야기를 계속 쓰느냐’는 물음에 “질문이 이상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민진은 지난 24일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수여한 ‘2022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여성창조상은 예술 등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여성에게 주는 상이다. 시상식이 열린 서울 한남동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이 작가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뉴욕 토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뉴욕 퀸스에서 살았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브롱스과학고를 나왔고, 예일대에서 역사, 조지타운대에서 법을 공부한 뒤 뉴욕에서 기업 변호사로 일했다. 지금도 뉴욕 센트럴파크 북쪽 동네에서 살고 있다. 남편을 따라 4년 동안 일본 도쿄에서 산 것을 빼곤 대부분의 삶을 뉴욕에서 보낸 셈이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 속에는 항상 ‘한국’이 있다. 그것도 오랜 시간 공들인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있는 그대로의 한국’이다. “서구 사회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 너무 일반화돼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그는 “소설을 통해 이를 바꿔보고 싶다”며 “한국 이야기를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집필 중인 장편 소설 <아메리칸 학원>도 한국 얘기다. 외환위기 때를 배경으로 한국의 교육열에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다. 그다음 소설인 <마셜 플랜>은 한국의 파독 간호사 이야기로 구상 중이다. 자서전 성격의 <이름 인식>도 쓰고 있다. 그는 “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선 한국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미국에서 소설가만큼이나 사회활동가로도 유명하다. 지난 3월엔 뉴욕타임스에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 범죄를 규탄하는 장문의 글을 실었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 영어로 답하던 그는 서툰 한국어로 “나도 사실 무서워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사를 공부할 때 보면 많은 사람이 침묵한 탓에 변화가 더디거나 아예 오지 않았죠. 두렵고, 그래서 많이 울기도 하지만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용기를 낸 거예요.”
그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을 ‘엑스트라 아시안’이라고 지칭한다. “나는 특별히 더 아시아인”이라는 의미다. 그는 “요즘 많은 동양계 미국 젊은이들이 자신이 아시아인인 것을 창피해하고 싫어한다”며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엑스트라 아시안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민자로서의 삶의 목적이 백인 사회에 동화되는 것이어선 안 된다”며 “어디서든 남들과 똑같아지려 하기보다 나답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1995년 변호사를 그만두고, 2007년 첫 장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냈다. 두 번째 소설 <파친코>는 10년이 지난 2017년 출간됐다. 다음 작품인 <아메리칸 학원>은 언제쯤 나올까. 그는 한국말로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이미 5~6년 전부터 80명 가까운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준비한 책이라고 했다. 그는 “작가의 작업 중에 글을 쓰는 것은 굉장히 쉬운 부분”이라며 “그런데 글을 쓰기 전에 특히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뭔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부분도 자주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학원’이 그런 예다. “학원을 나쁜 걸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부모와 학생,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다 보니 다들 다르게 얘기하더군요.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책을 쓸 수 있게 됐어요.”
그는 다작 작가가 아니다. 이제 겨우 두 권의 소설을 냈다. 그는 “아직 집필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마셜 플랜>에 관한 자료나 책도 박스째 집에 엄청나게 쌓여 있다”고 말했다. “소설가로서의 목표는 죽을 때까지 최소한 다섯 권의 ‘훌륭한 책’을 쓰는 거예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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