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를 3년 가까이 무조건 봉쇄로만 미봉해 온 억압 일변도 통치에 시민들의 저항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억눌렸던 분노를 터뜨리게 된 계기로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꼽힌다. 중계방송을 시청한 중국인들이 관중석의 사람들이 전혀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이게 뭔가” “우리만 뭐냐”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이 중국인들의 울화통을 건드린 것은 마스크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본선에 진출한 반면, 중국 대표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는 상실감이 크다. 인구 규모에서 비교도 안 되는 ‘소국’들이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월드컵 무대를 휘젓고 있는데 14억 인구의 ‘대국’이 번번이 예선 탈락하면서 받은 자긍심의 상처가 켜켜이 쌓였다.
한국이 10회 연속을 포함해 11차례 본선에 발을 들여놓은 동안 중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딱 한 번 본선무대를 밟았다. 그것도 ‘지역 맹주’ 한국과 일본이 공동 주최국으로 본선에 자동 진출하는 바람에 아시아 예선이 수월해진 덕을 봤을 뿐, 그 외에는 본선 근처에도 못 가봤다. 이번 카타르 지역 최종예선에서는 한 번도 진 적 없었던 베트남에 1-3으로 패배하며 조 꼴찌로 탈락하는 굴욕까지 더해졌다.
중국이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나라라면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은 소문난 축구광(狂)이다. 공식석상에서 자신에겐 ‘중국 축구 3대 소망’이 있다며 월드컵 본선 진출,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을 꼽았을 정도다. 권위주의 독재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축구로 희석시키겠다는 계산까지 더해져 ‘축구굴기’를 국가 차원에서 밀어붙이고 있다. 취임 직후 공산당에 ‘중국 축구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고, 2015년 국가발전계획위원회를 통해 공식 보고서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부총리가 진두지휘하는 ‘중국축구개혁위원회’를 설치해 “2050년까지 세계 최강팀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담았다.
보고서를 신호탄 삼아 ‘축구공정’을 본격화했다. “세계 최고가 되려면 세계 최고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며 자국 대표팀을 우승시킨 경험이 있는 브라질과 이탈리아 지도자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했다.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뛰어야 중국 선수들 기량이 향상된다”며 자국 프로리그에 해외 특급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데도 엄청난 돈을 뿌렸고, 중국 귀화공작에도 공을 들였다. 카타르 대회 예선에 출전한 중국 대표팀에 브라질 출신 세 명, 영국 출신 두 명이 들어 있던 연유다.
그러고도 본선 진출은커녕 오만 베트남 같은 지역 중위권 팀에까지 혼쭐이 나며 최종예선 꼴찌로 탈락했으니, 중국인들의 자존심은 더 깊은 내상(內傷)을 입었다. 축구를 통해 철권통치에 대한 불만을 달래보겠다던 게 오히려 국민 염장만 지른 꼴이 됐다.
중국 축구가 국가 차원의 총력 육성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바닥을 헤매고 있는지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게 ‘관시(關系·끼리끼리)문화’에서 원인을 찾는 진단이다.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끼리만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해 일을 풀어가는 중국인들의 문화가 축구의 생명인 팀워크를 밑동에서부터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망한 선수라고 해도 관시가 없으면 소속팀의 주전선수로 출전할 수 없다” “대표팀의 중국 선수들이 귀화 선수들에게 패스해주지 않는다”는 등의 고발이 쏟아진 지 오래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의 ‘축구굴기’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근본 문제에 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축구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게 세계인의 걱정거리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