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노인네들이야 정부가 칼자루(종합부동산세)로 모가지를 내려치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이렇게 크게 칼자루를 휘두르면 어떡하냐는 거야."
1일 오전 10시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역삼세무서. 종부세 관련 민원을 처리하는 7층 재산세과 사무실 앞 복도는 80대 노(老)부부의 한탄 섞인 목소리로 메워졌다. 직업군인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국가유공자라고 밝힌 A씨(84)는 "1983년부터 40년 동안 한 평생 아내와 도곡동에서 1가구1주택자로 살았는데 올해 종부세가 110만원이나 나왔다"며 "소득이라고는 연금밖에 없는 내가 나이 90 다 되어서 무슨 돈으로 세금을 내느냐. 베트남에서도 살아돌아왔는데 종부세로 내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라고 했다.
A씨의 아내인 B씨(81)는 "작년엔 종부세가 47만원 나왔는데 올해 두 배로 뛰었다"며 "뉴스에선 고령자에게 종부세를 깎아준다 하더니만 순 거짓말이었다"고 털어놨다. 아내와 국세청 공무원 사이의 대화를 지켜보던 A씨는 "아휴 됐어…. 우리 같은 노인들이야 여기서 계산하는 식을 알 길이 있나…."라며 아내를 말렸다. A씨는 기자를 향해 "세무서 공무원은 작년에 뭘 잘못해서 세금이 적게 나온 것이고 올해엔 정상적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그건 공무원 입장이고 납세자 입장에선 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세금이 늘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종부세 납부기간(12월1~15일) 첫날인 이날 서울 세무서 각지는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종부세 고지액이 너무 많다며 항의하러 온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서울 삼성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고 밝힌 C씨(69)는 "이번에 263만원의 종부세가 부과됐는데, 이게 정말 정상적으로 계산된 세금이 맞는지 물어보기 위해 세무서를 찾았다"며 "정치권에선 1주택자의 종부세를 줄여줄 것처럼 말하더니만 결과적으로 작년과 세금이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국민의 종부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당초 예정된 100%에서 60%로 인하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과세 대상 공시가격에서 일정 규모의 공제액을 제외한 금액에 곱해져 과세표준을 정하는 비율로, 공정시장가액비율이 낮아지면 최종 세액도 낮아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더해 주택을 5년 이상 보유한 장기 보유자와 60세 이상 고령자는 최대 80%의 세액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공정시장가액비율 인하에도 불구하고 앞선 사례처럼 종부세가 작년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늘어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은 공정시장가액비율이 곱해지는 대상인 공시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17.2% 올랐다. 공시가격은 매년 4월에 확정되기 때문에 최근 집값이 떨어지고 있어도 4월 기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종부세가 부과된다. 정부는 올해 공시가격 급등으로 인한 종부세 급등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1가구1주택자에 대한 공시가격 기본공제 금액을 올해에 한해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자신을 60대 후반 여성이라고 밝힌 D씨는 "올해 종부세가 작년보다 올랐다"며 "집값은 떨어지고 있는데 공시가격이라는 정체 모를 기준이 올랐다는 이유로 세금이 늘어나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신수동 마포세무서를 찾은 70대 여성 E씨는 "집 하나에 평생 살면서 판 적도 없는데 집값 올랐다고 세금만 올려싸대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세무서 공무원에 항의했다.
서초세무서에서 만난 F씨는 "아버지께서 2018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주택을 증여받아 졸지에 3주택자가 됐는데, 주택을 바로 처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3년간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쳐 총 3억원을 때려맞았다"며 "집이란 게 하루 아침에 팔아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멀쩡히 어머니께서 살고 있는 집을 어떻게 팔 수가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F씨는 "한 달에 350만원 벌며 지난 30년 동안 모은 돈을 지난 3년 동안 종부세와 재산세로 다 날렸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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