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개미들이 '삼성생명법'을 외면하는 이유

입력 2022-12-01 17:30   수정 2022-12-02 00:21

“지금이 삼성전자가 현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할 시기인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돈으로 앞으로 삼성이 가야 할 투자에 힘을 집중하길 바란다.”

네이버 주식 투자자 카페인 ‘주식제값찾기’의 한 회원은 지난달 28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린 글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당시 박 의원은 카페에 직접 글을 올려 본인이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일명 삼성생명법)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주식·채권 가치 평가 방식을 취득 당시 가격이 아니라 현재 가격(시가)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과거 취득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중 총자산의 3%를 넘어서는 25조원어치를 강제 매각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처럼 많은 주식이 시장에 풀리면 ‘오버행(대기 매물부담)’ 이슈로 삼성전자는 물론 주식시장 전체가 충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한다. 600만 명에 달하는 삼성전자 주주에겐 큰 악재다. 삼성전자 역시 이재용 회장에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흔들려 자칫 주인 없는 회사가 될 수 있다.

박 의원은 “삼성생명법은 개미들에게 오히려 좋은 ‘개미 이익법’”이라며 이 같은 우려를 일축했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136조원(지난 9월 말 기준) 규모 현금성 자산을 활용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자사주를 사들이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삼성의 지배구조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박 의원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기존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주가 상승의 첩경”이라며 “600만 삼성전자 주주의 입꼬리가 올라갈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개미들은 박 의원의 논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카페 다른 회원은 “예전 도시바와 인텔의 몰락을 지켜보고도 모르시냐”며 “ASML 같은 우량기업 인수합병(M&A)이나 추가 시설 투자 등을 하지 않으면 바로 뒤처지는 것이 반도체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역대 최대 M&A였던 하만 인수에 약 10조원을 투입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동학개미 열풍 이후 똑똑해진 ‘스마트 개미’들은 자사주 매입에 따른 주가 부양이라는 근시안적 이득에 큰 관심이 없다”며 “오히려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에 그 돈이 쓰이기를 원한다”고 했다. 박 의원이 삼성생명법의 취지와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려면 좀 더 세련된 논리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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