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한 스타트업 데모데이 ‘긱스 쇼업’에서 우승을 차지한 포엔의 최성진 대표는 “전기차 배터리는 비싸고, 사용 후 버려질 때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이런 배터리를 저렴하고 안전하게 공급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창업했다”고 말했다. 포엔은 전기차 배터리의 잔존가치를 평가하고, 수리가 필요한 배터리를 고치는 회사다.
잔존가치를 평가해 더 사용할 수 있는 경우 배터리팩으로 만들어 다시 차량에 넣는다. 이 같은 리퍼비시(재제조) 서비스는 보통 신품의 반값에 이뤄진다. 차량에 다시 들어가기에 배터리 가치가 많이 떨어졌으면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팩 등 다른 용도로 재사용한다. 이마저도 어려울 땐 친환경 방식의 재순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최 대표는 “포엔은 전기차 순환 생태계의 가장 앞단에 있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17년간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며 기술연구소 그룹장을 지내는 등 ‘모빌리티 전환(MX)’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그는 현대차에 근무할 당시 연구소 내부에 있는 폐차장에서 전기차 배터리가 모두 버려지는 걸 보게 됐다. ‘정말 친환경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 2년 동안 이미 사용된 배터리를 살리는 연구에 나섰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엔 우려도 있었다. 재제조 배터리 수요가 앞으로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란 확신은 있었지만,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고객이 전기차를 운행하다가 고장이 나 배터리 교체비로 2000만원을 내게 됐다고 호소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최 대표는 “전기차가 늘어나면 이런 이슈가 증가할 것이고, 재제조 배터리를 싸게 제공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창업을 결심한 배경이다. 최 대표는 “좋은 기술을 개발해 갖춰놓고 있으면 전기차로 대세가 바뀔 시점에 시장은 가장 먼저 우리를 찾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포엔은 2019년 현대차 사내벤처로 출발해 2020년 분사했다. 배터리 잔존가치 평가 기술과 재제조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금까지 77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포엔은 택시 등 영업용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배터리 재제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 법인택시 다섯 대를 사는 택시회사에 재제조 배터리 한 대를 서비스해주는 식이다. 최 대표는 “택시는 주행거리가 길기 때문에 택시회사들이 전기차로 전환하려고 할 때 배터리 문제로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그 대안이 재제조 배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포엔을 사용 후 배터리 밸류체인(가치사슬)의 대표 플랫폼으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수리하려는 회사들에 포엔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최 대표가 다른 전기차 배터리 회사를 경쟁업체가 아니라 협업해야 할 동료로 보는 이유다. 그는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포엔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고은이 기자/사진=김범준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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