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올 들어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를 적극적으로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동성 장세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가 가능한 ELB에 자금이 몰리면서다. 연초부터 지속된 금리인상으로 이자가 높아지면서 수익률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유동성 위기에 부딪힌 증권사들의 자금조달 창구로 활용하면서 최근 ELB 발행 규모는 더 불었다.
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1월1일~12월4일) 발행된 ELB 규모는 12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8조5016억원) 대비 47% 늘었다. ELB의 형제 격 상품이지만 원금은 보전되지 않는 주가연계증권(ELS)의 발행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절반(약 43%) 가까이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은행 예·적금보다 수익률이 높으며, 부도·파산 등 발행사(증권사)의 신용문제가 발생하거나 투자자가 중도해지 하지 않는 이상 원금이 보전된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ELS와의 차이점이자 요즘과 같은 변동성이 큰 장에서 ELB가 주목받은 이유다. ELB는 원금은 보전되지만 예·적금과 달리 예금자 보호 대상은 아니다.
금리인상기 속 ELB의 투자매력은 더 높아졌다. 증권사들이 올 들어 치솟은 높은 은행 예·적금에 대응해 고금리 상품을 내놓으면서다. 최근 다올투자증권(8.5%)과 키움증권(8.25%)에선 연 8%대 상품까지 등장했다. 통상 ELS의 기대 수익률은 2~3% 수준이다.
ELB는 증권사 신용에 기반한 상품인 만큼 그간 대형사 발행 비중이 높았지만 올 들어 중소형사들도 활발하게 발행하고 있다. 금리인상에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자 당장의 자금 조달을 위해 ELB 발행을 선택한 것이다. 현재 증권사로선 대표 단기자금 조달 수단인 기업어음(CP)을 발행도 녹록지 않다. CP 금리가 연일 상승세여서다. 부동산프로젝트금융(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차환도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최근 한 달간 ELB 발행 규모는 크게 늘었다. ELB는 지난 한 달(11월5일~12월4일) 동안 무려 3조1541억원 규모로 발행됐다. 전체 약 4분의 1이 최근 한 달 사이 발행된 것이다. 이 기간 가장 많이 ELB를 발행한 곳은 현대차증권(6108억원)이다. 이어 대신증권(3936억원), 키움증권(3730억원), 하나증권(3289억원), 한화투자증권(2689억원), 유진투자증권(1680억원) 등 순으로 높았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중소형사들이 많이 발행하는 게 트렌드인 것 같다"며 "예금금리보다 높게 발행하다 보니 수요가 많이 있기도 하고, ELB 발행하면 수수료 수입 등 증권사 자본 확충에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증권사의 부도·파산 시 원금을 돌려받을 수 없어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뜩이나 증시 침체·경기 위축에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프로젝트금융(PF) 위기가 더해지면서 중소형 증권사들의 부실 위험은 특히 커진 상태다.
최근 하이투자증권, 다올투자증권 등 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비중이 큰 중소형 증권사들이 인력 감축과 조직 개편 작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도 보면 고금리 특판 상품을 제2금융권에서 팔았다. 이들 중소형사가 8%대의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면서까지 ELB 규모를 늘리려는 건 그만큼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경색이 심각하기 때문에 ELB 발행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금리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 프리미엄이 있다는 것이니만큼 고금리 상품이라고 투자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언할 수 없지만 워낙 부동산 익스포저가 컸기 때문에 상반기에도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지 않으면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부도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위기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며 "만에 하나 증권사가 부도에 이르면 원금도 못 받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