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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신(新)관치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에 예금 금리를 내리도록 ‘압박’ 혹은 ‘압력’을 가하면서 비롯됐다. 두 기관은 예금 금리를 올리면 저축예금으로 시중의 자금이 몰리게 되면서 돈이 절실한 곳으로 흐르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 같은 부작용이 빚어진다고 판단해 이에 대한 대책을 편 셈이다. 하지만 예금자들은 한국은행이 힘겹게 금리를 올리는 판에 예금금리 인상을 인위적으로 가로막는 것은 구태의연한 관치금융이라고 보고 있다. 더구나 금융감독당국은 각 금융그룹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둔 시점에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모으고 사고가 터지면 회장까지 징계하겠다는 으름장도 놨다. 금융감독기관의 은행 이자 개입은 용인될 수 있는 것인가.
금리를 올리자 바로 파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게 대출 금리가 오르는 것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의 대출 금리 자체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문제는 높은 이자를 주는 은행과 저축은행의 고금리 상품 예금이 늘어나자 대출 이자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가 오르고, 이게 다시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다. ‘영끌’ ‘빚투’족을 비롯해 가계와 기업의 대출금은 심각한 지경이어서 대출 이자 부담 증가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경제 전반의 시스템 위기를 재촉할 조짐도 있다. 10월 정기예금 잔액은 931조6000억원으로 한 달 새 56조원 이상 늘었다. 카드 대금을 뺀 가계대출금만 1757조원(9월 말)에 달해 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 이자 부담은 3조3000억원씩 늘어난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또 돈이 정기예금 등으로 쏠리면 당장 산업계의 자금 조달 길이 막히는 ‘돈맥경화’ 현상도 심해진다.
금융당국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것은 자연스럽다. 은행 채권 발행을 억제하고 예금 금리 올리기를 막는 것 모두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금융권의 비생산적인 자금 확보 경쟁을 막자는 취지도 있으니 이해해야 한다.
감독당국이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연 5%대의 예금 상품이 불과 한 주 새 자취를 감추면서 4%대로 떨어진 것은 금융시장의 왜곡을 초래할 것이다. 저축은행에서는 오르는 금리와 반대로 1주일 새 0.5%포인트까지 떨어진 경우도 있다. 은행의 예금 유치, 자금 확보 경쟁에 개입하면서 감독당국 스스로가 시장을 교란시키는 격이다. 예금 금리가 떨어지면 은퇴 퇴직자 등 고령층과 예금에 기대는 금리 생활자들에겐 바로 타격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걸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노골적 관치금융이 나타난다는 것은 더욱 모순이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이나 언급한 ‘자유’와 자율은 정부의 주요 국정철학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 커지는 관치 논란은 국정철학이 행정 일선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금융사 팔을 비트는 식의 직접적 개입·간섭을 지양해야 한다. 시장에 메시지를 주려면 좀 더 자연스럽게 금융회사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면서 시장 친화적으로 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생긴다고 보이는 곳만 땜질하고 원칙도 없이 오락가락 대책을 남발하면 금융시장에서 ‘정책 내성’만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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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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