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9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한은의 향후 통화신용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한은은 한국은행법상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설명 책임이 있는데요. 이에 따라 한은은 매년 분기마다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에 제출합니다.
올해 마지막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는 '향후 반도체 경기 여건 및 경제적 영향 점검'이란 참고 분석이 눈에 띄었습니다. 반도체 경기가 내년 한국 경제의 성장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라는 판단으로 읽히는데요.
한은은 보고서에서 "향후 반도체 경기 하강은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반도체 경기 하락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번 분석을 진행한 한은 조사국은 "향후 주요 제조사들은 수요 위축에 따른 과잉 재고를 해소하기 위해 생산 조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재고가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상 재고 조정에는 2~3분기 정도가 지속돼 내년 하반기부터는 반도체 경기가 완만히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면서도 "지정학적 긴장 고조 및 높은 에너지 가격 지속 가능성 등 글로벌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어 반도체 경기 회복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높은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따라 내년 중 반도체 부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 기여도도 축소될 것이라는 게 한은의 전망입니다. 한은 조사국은 관련 분석을 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 10월 발표한 3분기 실적 발표 자료 등을 참고했다고 밝혔습니다. 개별 기업의 실적 자료를 참고자료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의 제시한 건 과거에는 사례를 찾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여러 자리에서 반도체 경기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 총재는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시장이 내년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묻는 말에 "부동산 시장 둔화에 따라 소비가 영향을 받겠지만 전체 전망으로는 반도체 산업이나 중국 경기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부동산 경기보다 반도체 경기가 한국 경제에 더 영향을 줄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이 총재는 또 지난 8일 국회 최고위 경제금융 과정에 연사로 나서 "한국 경제에서 경기를 결정할 때 반도체 영향이 크다"며 "IT(정보·통신) 상품 수요 둔화 등으로 최근 반도체 경기는 하강 국면이 이어지고 있고 이에 따른 수출 부진 우려도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반도체 가격 전망은 빨라야 내년 하반기부터 (회복하고), 회복되는 하반기부터 경제가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