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에 사는 회사원 윤모씨(38)는 “이미 공동명의 집이 있고 한동안 쓸모없을 것 같아 청약통장을 해지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분양시장 열기가 식으면서 청약통장 가입자가 넉 달 연속 감소했다. 대부분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짧은 2순위 가입자들이다. 고금리로 대출이자 부담이 커지자 청약통장에 묵혀두던 자금을 이자, 생활비 등으로 꺼내 쓰기 위한 ‘불황형’ 해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청약저축과 청약예금, 청약부금을 하나로 묶은 상품인 주택청약종합저축은 매년 가입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였지만 지난 7월 처음으로 마이너스(-1만2000여 명)를 나타냈다. 이후 8월 -1만5000여 명, 9월 -3만3000여 명 등으로 갈수록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2순위 통장 소유자가 전체 감소 인원 14만6000여 명 중 9만7000여 명(약 70%)에 이른다. 1순위 청약통장 보유자는 2순위에 비해 먼저 신규 주택을 공급받을 권리가 있다. 서울 거주자는 민간 주택에 청약할 때 청약통장 가입 후 24개월이 경과하고 예치금이 1500만원 이상(모든 면적 기준, 전용면적 85㎡ 이하는 300만원)이면 1순위 권리를 갖게 된다. 이 조건에 부족하면 2순위가 된다. 투기과열지구를 제외한 수도권은 12개월, 지방은 6개월과 각각의 예치금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대체로 소액 자금을 넣어두는 2순위 통장 가입자가 이를 해지하는 건 그만큼 청약시장의 투자 수요가 급랭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윤수민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신규 아파트가 더 이상 ‘로또 분양’이라고 보기 어려워지자 여유자금을 청약통장에 넣어둘 유인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약통장 해지는 고금리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전형적 불황기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카드론, 신용대출 등의 빚을 갚는 데 내 집 마련을 위한 장기투자금을 털어 쓰는 것이다.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단돈 100만원이라도 기존 대출을 갚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대 중후반까지 오른 데 비해 청약통장 금리는 연 2.1%에 불과하다.
수도권은 그동안 규제 지역으로 묶여 청약 조건이 까다로웠기 때문에 사실상 2순위 통장 가입자가 주요 단지에 당첨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2030세대의 주택시장 유입세가 약해진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청약시장과 일반 매매시장 양쪽 모두 젊은 층의 매수세 위축이 심화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이 한국부동산원의 연령별 주택매입 거래량을 분석한 결과 올해 1~10월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44만9967건) 중 30대 이하 거래 비중은 24.1%로 나타났다. 부동산원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9년 이후(1~10월 기준) 가장 낮은 비중이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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