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입자가 확정일자만으론 안 된다며 ‘전세권 설정 등기’를 요구하는데 해줘도 될까요?”
깡통전세, 전세사기 등으로 전세시장이 흉흉해지자 보증금 보호를 위해 더욱 강력한 법적 장치를 강구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확정일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임차인이 대항력 ‘끝판왕’으로 불리는 전세권 설정 등기를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9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전세권 설정 건수는 6만875건이다. 2018년 6만9005건, 2020년 6만5144건으로 매년 감소 추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깡통전세’ 사고가 크게 급증하자 최근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전세권 설정 등기 관련 문의가 다시 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임대인은 ‘임차인이 전세권 설정을 요구하는데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수용할지 고민이 크다’는 사연을 올렸다. 반면 한 임차인은 ‘전세금 8억7000만원인데 최근 집주인이 주택담보대출 3억원을 받을 테니 양해해 달라고 한다. 전세권 설정으로 대항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전세권 설정 등기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자신이 전세 세입자라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후순위 권리자, 기타 채권자보다 전세금의 우선 변제를 받는다.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별도로 배당 신청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전세금을 받을 수 있다. 반면 확정일자는 전세금을 받기 위해 반환 소송과정을 별도로 거쳐야 한다.
강력한 보호력에도 불구하고 전세권 설정 등기 건수가 감소세인 이유는 등기 설정의 어려움 때문이다. 전세권 설정을 하는 데 보증금 1억원당 5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한 부동산 등기 전문 법무법인 관계자는 “등록세, 등기신청수수료, 법무사비용 등을 합하면 보증금 1억원당 50만~60만원 정도 비용이 드는데 지난달부터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권 설정 등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집주인의 동의’다. 확정일자 등록은 집주인 동의가 필요 없지만 전세권 설정은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 한다. 한 임대사업자는 “과거엔 임차인들이 어렵게 말을 꺼냈던 전세권 설정 등기를 요즘은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예전 같았으면 바로 거절했겠지만 임차인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전세권 설정 등기가 만능특효약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빌라왕 사태’처럼 임대인의 체납 부동산 세금이 있으면 체납세금이 0순위 변제이기 때문에 전세권 설정의 실익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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