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부 IMM인베스트먼트 대표(최고투자책임자·CIO)는 21일 “유동성의 힘으로 성장해온 플랫폼 기업은 수익을 증명해 내야하고 기술 기업도 연구·개발(R&D)을 수익성과 연계하지 않으면 투자받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수익이 나는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지만 수익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내야 한다”라며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없으면 투자받기 어렵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비용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인력 문제에서도 위기관리 능력을 강조했다. 정 대표는 “구조 조정과 관련해 직원들과 합의를 잘 끌어내는 것도 경영자의 능력”이라며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보상으로 직원과 상생 방안을 찾고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1999년 설립된 IMM인베스트먼트는 벤처펀드 운용자산(AUM)만 1조3766억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VC)로 꼽힌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크래프톤, 무신사,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등 내로라하는 기업을 초기부터 발굴한 투자사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금리 인상에 따른 유동성 축소 영향으로 이 회사의 내년 투자 규모는 2000억~2500억원으로 올해(2500억원)보다 비슷하거나 줄어들 전망이다. 내년 신규 펀드 조성 목표액도 2000억원으로 평년보다 낮게 잡았다.
정 대표는 앞으로 2~3년간 투자 가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내년 하반기 주식 시장 반등과 기업공개(IPO) 시장이 좋아진다면 벤처투자 시장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빌딩, 주식 등 자산 가격이 다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벤처 투자 업계도 눈높이를 낮춰야 할 것”이라면서도 “기업 가치 하락으로 창업자의 지분 가치가 과도하게 희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벤처 기업의 복수의결권 제도가 하루빨리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 벤처 투자 가뭄기에도 기술 기업은 투자 기회가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기술 기업은 오랜 R&D 때문에 수익을 바로 만들어내긴 어렵지만, 인수·합병(M&A)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다”며 “지난 8월 현대차가 자율주행 솔루션 기업 포티투닷을 인수한 것처럼 국내 성장성 있는 테크 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최근 투자한 반도체 극자외선(EUV) 장비 개발업체 이솔을 비롯해 퓨리오사AI, 리벨리온 등 AI 반도체 스타트업을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다. 정 대표는 “내년에는 반도체, 클라우드 솔루션, 로봇, 빅데이터 머신러닝, 스마트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등 테크 기업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반도체부터 로봇, 공정자동화, 커머스의 구매관리까지 SaaS가 다 들어간다”며 “국내 좋은 소프트웨어 인력이 많이 늘어난 덕분에 기업용(B2B) SaaS뿐만 아니라 소비자용(B2C) SaaS까지 새롭게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펜데믹이 끝나면서 공연·여행·서비스 관련 분야도 회복 탄력성을 띠면서 내년에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성장성에 ‘빨간불’이 켜진 플랫폼 스타트업과 관련해선 “플랫폼 기업들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소비자들은 플랫폼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익숙해 있다”며 “MZ세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팬덤을 확보한 플랫폼은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메타버스 분야의 성장성에 주목했다. 정 대표는 “내년 애플의 혼합현실(MR) 헤드셋이 출시되면 2007년 아이폰 출시 때처럼 큰 변화가 일 것”이라며 “가상과 현실 공간을 연결하는 다양한 콘텐츠 비즈니스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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