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 대한민국 최초 종합문화예술 방송인 한경아르떼TV가 개국했다. 클래식 음악과 미술, 발레, 국악, 오페라 등 다양한 분야의 고품격 콘텐츠를 제공해 문화예술에 대한 접점을 넓히고, 문화강국으로의 도약에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한경아르떼TV 개국을 축하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관록의 지휘자 장윤성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올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받은 첼리스트 최하영이 함께했다.
쇼스타코비치의 화려하고 진취적인 ‘축전 서곡’이 음악회의 서막을 힘차게 열었다. 본래 기념행사를 위한 음악인 이 곡은 세계의 역사에 짙은 어둠을 드리웠던 스탈린이 절명하면서 ‘해빙’을 맞은 시기에 작곡됐다. 새 희망을 품고 밝은 미래를 다짐하는 메시지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작품이다.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힘찬 팡파르와 날렵한 악상 연주에 이런 의미를 담았다. 금관 앙상블은 굳은 의지를 주장하듯 힘 있고 강렬했으며, 현악의 리듬은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또한 다양한 악기의 음색이 고루 전달돼 거대한 편성의 무게감 있는 음량에 섬세함을 더했다.
이어 최하영의 협연으로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1번 C장조가 연주됐다. 최하영은 빠른 음형과 비브라토(음을 떨리게 하는 기법)를 꾸밈음과 같이 처리하고, 긴 음정을 노래하듯이 연주했다. 하이든 시대에 있었을 법한 해석으로 깊은 인상을 줬다. 이는 그가 보잉(활질)으로 예술적인 소리를 구현하는 데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특히 1악장의 카덴차에서 높은 수준의 연주 기교를 들려줬고, 3악장에서는 화려하고 빠르게 진행하면서도 무리 없이 음악을 이끌어갔다. 미래의 거장을 예견하게 하는 연주였다. 앙코르는 20세기 작곡가 가스파르 카사도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2악장 ‘사라반다’를 들려줬다. 시종일관 두 개의 줄을 동시에 치는 ‘더블 스톱’ 기법을 사용하고, 첼로가 낼 수 있는 최고 음에 접근하면서 춤의 리듬도 타야 하는 난곡을 익숙한 솜씨로 연주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콩쿠르 우승자의 명성을 재확인한 순간이었다.
후반부에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d단조가 연주됐다. 이 곡은 ‘반인민 형식주의자’로 몰려 위기에 처한 작곡가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 작품이다. 실제로 4악장에 부활을 노래한 푸시킨의 시에 붙인 자신의 가곡을 인용해 재기에 대한 열망을 담았다. 1악장에는 짝사랑의 고통을 안겨준 여인이 불렀던 ‘아바네라’를 인용하는 등 곳곳에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가 투영돼 있다. 이렇게 격동의 현장을 살아낸 예술가의 삶이 반영된 음악이라는 점에서 이 장대한 교향곡은 작곡된 지 8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삶에 대한 용기의 메시지를 전한다.
장윤성이 지휘하는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각 선율의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화음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한 편의 서사시로 풀어냈다. 특히 선율의 특징과 각 악기의 음색을 또렷하게 전달해 각 장면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하고 대비를 드러냈다. 이로써 음악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이런 특징은 독주가 자주 등장하는 2악장에서도 충분히 발휘됐고, 3악장은 가장 작은 음량까지 도달하며 숨이 멎을 듯 압도하는 숭고한 아름다움에 접근했다. 4악장의 팡파르는 공연장 공간 전체에 공명을 일으켰고, 관객은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 이끌리는 경험을 했다.
앙코르로 르로이 앤더슨의 ‘성탄 축제’가 연주됐다. 여러 크리스마스 캐럴이 메들리로 이어지며 돌아가는 관객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한경아르떼TV 개국을 축하하는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이날 연주는 올해 ‘한국을 이끄는 음악가’ 시리즈 등 다수의 기획 및 초청 공연을 통해 앙상블의 역량이 상당히 성장했음을 확인시켜 줬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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