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CJ제일제당이 촉발한 제판전쟁의 양상은 과거와 달리 단순하지 않다. ‘가재는 게 편’이란 공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유통업체인 이마트만 해도 내부에선 쿠팡보다 CJ제일제당이 승기를 잡기를 원하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도 마트와 슈퍼마켓 사업부를 통합하기로 하면서 CJ제일제당 등 대형 식품 제조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이 마트와 슈퍼마켓의 통합 소싱을 추진 중”이라며 “슈퍼마켓에도 롯데마트와 동일한 공급가를 적용해달라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CJ제일제당, 대상, 풀무원, 롯데제과 등의 발주를 최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대형마트라도 이마트는 롯데쇼핑과는 속내가 다르다. 같은 유통업체 편을 들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납품사인 CJ제일제당과 ‘1등끼리’라는 정서를 공유한다는 분석이 많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1993년에 1호점을 낸 이마트는 2000년대에 신흥 유통 강자로서 농심과 기싸움을 벌이는 등 한때 제판전쟁을 주도했다”며 “월마트, 카르푸 등 외국계와의 전쟁에서 완승하고, 대형마트 업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한 이후로는 제조사와도 싸움보다는 공생을 택했다”고 말했다.
실례로 CJ제일제당이 신제품을 만들면 이마트는 매대에 적극적으로 진열해준다. 원가 구조 변화에 따라 마진율을 서로 양보·조정하면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e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이마트의 성장을 잠식하고 있는 등 보다 직접적인 경쟁자라는 점도 이마트가 CJ제일제당에 유대감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제조사도 모두 한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게 실상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은 1등 식품업체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2위와 압도적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는 몇 안 된다”며 “2위와 3위 업체들은 CJ제일제당과 쿠팡의 싸움을 시장 점유율을 좁히기 위한 기회로 여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 5만여 개에 달하는 점포 수를 무기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편의점업계도 이 싸움에 초미의 관심을 보인다. 쿠팡이 CJ제일제당으로부터 ‘항복 문서’를 받아내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CJ제일제당에 “우리도 납품가를 깎아달라”며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유통·식품 양쪽 업계의 예상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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