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돌렸지만, 이번 IRA 사태는 한국 외교에 큰 숙제를 남겼다. 야당의 ‘외교 참사’라는 비판에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주요 교역·투자국 입법 동향에 무지했던 정황이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가 IRA 관련 회의를 한 건 미국 의회가 법안 내용을 처음 공개(지난해 7월 27일)한 지 보름이 지나서였다. 그것도 업계 요청으로 이뤄졌고, 그 후 불과 닷새 만에 법안이 상·하원과 백악관을 거쳐 시행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도 못하는 사이 한국 자동차업계를 흔드는 법안이 처리된 것이다. 그사이 캐나다가 보조금 지급 대상을 ‘미국산’에서 ‘북미산’으로 고치는 데 성공한 것과 비교된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반을 보내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한 번 의회를 통과한 법을 개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유럽연합·일본까지 나서 대미(對美) IRA 스크럼을 짜고서야 미국이 어쩔 수 없이 재무부 추가 지침을 통해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사후 대응보다는 사전에 위해(危害)법안을 식별해내고, 대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미 삼성·현대차 등 민간 기업들은 주요 투자·교역국의 현지 조직을 확대하며 정보 수집·대관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정부도 교역·투자국의 입법 동향에 대한 사전 점검과 외교적 대응 능력, 이른바 ‘리스크 센싱(risk sensing)’ 능력을 강화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더구나 IRA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경기 침체와 경제 블록화,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첨단 분야를 둘러싼 무한 경쟁 상황이 겹치면서 또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자국 우선주의’ 입법이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적당히 와인이나 스테이크로 폼 잡는 외교로는 제2, 3의 IRA 사태 재발 방지를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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