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정도는 써야 VIP"…백화점, 역대급 실적에도 배짱영업

입력 2022-12-31 14:25   수정 2022-12-31 14:36

롯데백화점이 새해부터 우수고객(VIP) 제도 등급 기준을 조정한다. 20여년 만이다. 기존에 연간 6000만원 이상을 쓰던 고객은 MVG 프레스티지 등급으로 분류돼 별도 전용 라운지 공간 이용 혜택과 발렛 서비스 등을 제공 받았지만, 이젠 4000만원대 이상을 쓰면 받던 등급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실질적 혜택이 줄어든 셈으로, 더 나은 수준의 VIP 혜택을 받으려면 앞으로는 연간 1억원 이상 써야 한다.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은 VIP 선정 기준을 조정해 연간 4000만원 이상 구매 고객이 부여받는 자스민 등급 기준을 연간 5500만원 이상으로 상향했다. 최우수 등급인 자스민 블랙 기준은 8000만~90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올려 잡았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 3사는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와 소비 심리 위축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큰 폭으로 늘어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백화점 ‘오픈런(매장문이 열리자마자 쇼핑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 등 명품의 인기가 지속되면서 VIP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선 오히려 VIP 기준은 높아지고, 혜택은 줄어든다는 불만이 흘러나온다.
실적 좋다면서 야박해지는 VIP 혜택
올해 사상 최고 실적을 냈다는 신세계백화점은 최근 연 구매 금액 400만원 이상인 VIP 고객(레드 등급)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해 온 ‘무료 음료 상시 제공 쿠폰’ 혜택을 없앴다. 백화점이 자사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확대에 나서면서 각종 이벤트 참여 시 무료 음료 쿠폰을 발급해 왔는데 혜택을 줄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월 앱 푸시(알림) 허용 고객에 주던 월 1회 쿠폰과 지니뮤직라운지 리퀘스트송 이벤트 참여 고객 대상 쿠폰 제공 프로모션도 없애기로 했다.


롯데백화점 VIP 고객들은 발렛주차 서비스가 일부 변경된 데 대해 불만이 적지 않다. 연간 6000만원 이상 구매를 하면 주어지는 프레스티지 등급 고객은 내년 1월부터 본점 에비뉴엘관 1층에 가능하던 발렛주차 장소가 본관 1층으로 변경됐다. 잠실점에서는 본관과 에비뉴엘관 1층에서 지하(1·2층)로 바뀌었다.

VIP 고객들은 백화점 3사가 그동안 혜택을 계속 줄여왔다고 주장한다. 가족 단위로 매출을 합산해주던 제도를 폐지한 게 대표적. 기존에 가족 매출과 합산해 프레스티지 등급 이상을 받았던 롯데백화점 고객들은 특별한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VIP 혜택을 받으려면 더욱 까다로운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도 자사 제휴카드나 현금 결제시에만 VIP 선정을 위한 금액을 100% 인정해준다. 상품권이나 타사 카드 등의 방법으로 결제시 신세계포인트 적립금액의 50%만 인정한다.
"코로나로 혜택 거의 이용 못했는데…"
VIP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 불만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 커졌다. 백화점 이용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VIP 혜택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라운지 이용이나 주차 등 서비스가 팬데믹 기간 일부 중단하거나 변경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VIP 고객은 백화점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업계에 따르면 경기에 소비가 좌우되지 않는 VIP 고객 매출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최대 40%를 차지한다

다만 명품이나 럭셔리 브랜드 소비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VIP 수가 늘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명품 소비가 워낙 늘어 두세 품목만 구매해도 VIP 기준에 드는 경우가 많고 20~30대 고객까지 늘면서 연간 4000만~1억원을 쓰는 VIP 고객 수가 포화상태”라며 “혜택을 어느정도 조정할 수 밖에 없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기업 환경을 둘러싼 ‘사전 대비’라는 분석도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올 중순부터 타격을 받은 가계 구매력이 내년에는 더욱 뚜렷하게 유통업체 실적과 시장 지표에 반영돼 성장이 정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백화점·대형마트·온라인쇼핑 등 5개 소매유통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한 ‘2023 유통산업 전망 조사’ 결과를 보면 내년 성장세가 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내년 소매시장 성장률 전망치는 1.8%에 불과했다. 코로나19 기저효과가 반영된 2021년의 8.6%, 2022년 1∼9월의 5.9% 대비 대폭 둔화한 수치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성장률(2.5%)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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