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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무역이 꼭 필요하지도 않다. 세계 모든 나라가 더 편리한 교역 등을 위해 도량형 단위를 미터법으로 바꿨는데, 홀로 ‘임페리얼’ 식을 고수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 식으로 하면 말, 되 등과 같은 피트(Ft), 야드(yd), 파운드(lb), 온스(oz) 등을 아직도 쓰고 있다. 임페리얼 식의 원조인 영국도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뒤 미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참 불편하지만, 장점이 하나 있다. 거리다. 차를 몰고 하루 1000㎞를 간다는 건 한국에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부산을 왕복하고도 200㎞를 더 가야 하는 거리이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을 여행할 때 하루 600마일(1마일=1.609㎞)씩 여러 번 달렸다. 같은 거리지만 1000㎞가 아니라 600마일이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땅덩이가 넓은 나라에선 ‘임페리얼 식 도량형이 낫겠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미터법 도입을 중단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땅이 넓고 도로가 많다 보니 미 전역의 도로표지판을 바꾸는 데만 수년간 매년 200억달러가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화폐 액면 단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13만원짜리라면 망설일 때가 많지만, 미국에서 99.9달러짜리를 살 땐 그렇지 않다. 달러를 쓰면 싸게 느껴지고 그래서 더 쓰게 된다. 사실 판매세와 팁을 감안하면 99달러짜리가 더 비싼데도 말이다.
미국이 소비 천국이 된 데는 이런 낮은 화폐 단위에 의한 심리적 요인도 한몫할 것이다. 한국은 내수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는 원화의 높은 액면 단위가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인플레이션, 경제 혼란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는 후진국이 주로 시행해온 탓일 것이다. 당장 하자는 것도 아니다. 올해는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괜한 혼란을 더할 필요는 없다. 성공적 리디노미네이션엔 몇 년이 필요한 만큼 미리 검토하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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