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국내 자금시장 경색은 종금사 사태를 빼닮은 측면이 크다. 악재가 더해지며 상황이 악화한 근본 배경에 금융회사의 조달-운용 간 만기 불일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11~12월엔 “최소 50조원의 매물 폭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공포도 살얼음판 채권 시장에 추가됐다. 170조원 규모 확정급여형(DB형) 퇴직연금 계약 교체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가 새 사업자에게 현금으로 넘겨줘야 해 보유 채권을 대거 매도할 것이란 우려였다. 통상 기업과 사업자 간 퇴직연금 계약은 1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12월에 약 80% 만기가 몰려 있고 실제 30% 정도는 교체되기 때문이다. DB형 사업자들이 1년 계약임에도 너나없이 평균 만기(듀레이션) 2~3년의 장기채권으로 운용하는 관행이 화근이었다.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제시해 사업자를 따내려는 무분별한 경쟁의 결과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위기를 초래한 근본 구조가 바뀐 게 없어서다. 특히 3개월마다 차환해야 하는 PF ABCP 시장은 주택경기가 더 하강하면 언제든 다시 마비 상태가 될 수 있다.
금융사들은 시장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진 지금 조달-운용 간 만기 불일치를 최대한 줄이고 자본 확충, 자산 매각 등 유동성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금융당국은 위기 재발 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동시에 ABCP나 퇴직연금시장처럼 과도한 조달-운용 간 만기 불일치를 유발한 제도적 문제가 없었는지 살피고, 필요하면 개선해야 한다. 종금사 사태처럼 유동성 위기가 기업 연쇄 부도로 이어지는 신용위기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게 새해 모든 금융시장 관련자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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