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제 막 고통의 터널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반도체 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에 PC용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전 분기보다 각각 10~15%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 9월 말 기준 삼성·LG전자의 재고자산이 68조원에 달할 정도로 가전업계도 가파른 ‘수요 절벽’에 직면했다.
반도체가 수출의 20%를 책임져온 버팀목이라는 점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올해 한국 반도체 수출이 작년보다 11.5%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은 1%대에서 0%대로 속속 내려가고 있으며, 마이너스 전망(노무라증권, -1.3%)까지 나왔다.
온통 암울한 전망투성이지만, 업황 반전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소니 소프트뱅크 등 8개사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드림팀을 꾸려 합작사를 출범시켰다. 미국은 세계 반도체 기업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고, 유럽도 반도체 자급에 나섰다. 우리 반도체업계가 메모리 일변도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자율주행 반도체 등으로 영역을 넓히는 등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선제적 투자와 혁신으로 한발 앞서 미래를 준비해야 다가올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반도체 업황 사이클이 짧아지는 추세다. 당장 어렵다고 미래 투자를 줄이면 기회가 와도 소용없다. 세상을 바꿀 기술과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정부·여당은 최악의 가뭄에도 농업용수를 반도체 공장으로 돌리고 1년에 두 차례 반도체 학과 신입생을 뽑는 대만의 파격을 배울 필요가 있다.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확대는 물론 각종 인허가 규제 철폐와 용수·전력 등 인프라 구축에 결연한 각오로 나서야 한다. 야당도 ‘재벌 특혜’ 등 낡은 선동 구호로 여론을 호도할 게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적극 협조해야 한다. 반도체는 우리에게 죽고 사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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