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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나온 배경은 수급 불균형 확대로 인한 쌀값 급락이다. 2017년 정부는 당시 기준 역대 최대인 37만t을 한꺼번에 격리했다. 이후 쌀값은 13~18% 올랐다. 올라간 쌀값은 2년간 어느 정도 유지됐는데, 2020년 태풍 피해로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많이 줄었고, 쌀값은 뛰기 시작했다.
쌀값이 오르자 농민들은 쌀 재배 면적을 늘렸다. 2021년 쌀 재배 면적은 2020년보다 6000㏊ 늘었다. 쌀 재배 면적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20년 만에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재배면적이 늘고 기상 상황도 좋자, 평년 생산량을 훌쩍 넘는 쌀 388만t이 생산됐다. 쌀 소비량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역대급 공급 증가로 쌀값은 급락할 수밖에 없었다. 쌀 수요는 가격탄력성이 크지 않다. 값이 싸져도 소비가 거의 늘지 않는다. 반면 공급이 조금만 늘어도 가격은 크게 하락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은 단기적으로 분명히 쌀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쌀값 하락의 근본 원인인 수급불균형은 오히려 악화시킬 개연성이 있다. 정부 수매에 따른 수확기의 일시적 가격 상승으로 재배면적 감소가 둔화해 수급불균형이 더 악화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초과 물량을 수매하기 때문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던 농가도 쌀로 품목을 이전할 유인을 제공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개정안이 시행되면 재배 면적 감소 폭 둔화로 2030년까지 연평균 43만2000t 초과 생산돼 2027년 1조1872억원, 2030년 1조4659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격리 물량을 보관하는 비용도 누적될 것이다. 수십조원의 재정이 투입되지만 그렇다고 농민이 큰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다. 같은 보고서는 산지 쌀값이 2030년 80㎏에 17만2709원으로 올해(18만7000원)보다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결국 농가의 기대와 달리 중장기적으로 농가에도 손해가 된다.
이처럼 쌀의 시장격리 강제화는 언 발에 오줌 누는 것과 같은 일시적 농민 달래기에 지나지 않는다. 쌀값 하락의 근본 원인이 수급 불균형 때문이라면 정부 정책은 소비를 늘리거나 초과 공급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소비는 늘릴 방법이 사실상 없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쌀 시장 개방을 미루고 미루다 2021년 최종적으로 개방하면서 국내외 가격차를 감안해 쌀의 관세를 513%로 결정했다. 이렇게 국내 쌀 가격이 국제 가격의 여섯 배나 비싸게 유지되는 이상 밀과 같은 다른 대체재와 경쟁할 수 없다. 밥쌀 이외의 다른 용도를 위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없다. 게다가 이제는 입맛까지 변했다.
그렇다면 쌀 생산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다른 전략 작물로의 이전은 농업 인력의 고령화, 기계화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면 어떤 정책을 펼쳐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쌀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쌀 경작 면적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지인의 농지 취득과 농지 전용을 쉽게 해 원하는 농민만이라도 농사를 그만둘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식량안보라는 이름으로 탈농(脫農)을 막을 것인가. 사실 안보로 치면 식량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품목도 여럿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식량은 초과 생산된다. 안보와 직결된 것들이 안정적으로 수입될 수 있게 하는 건 외교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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