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주행거리 400㎞로 보급형 승부
지난해 포드의 짐 팔리 CEO가 전기차 가격에 관한 흥미로운 예언을 했다. 2만5,000달러(한화 3,100만원) 수준의 보급형 전기차 경쟁이 머지 않았다는 예측이다. 블룸버그NEF의 전망처럼 2030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승용차의 52%가 전기차로 전환되기 위해서라도 보조금을 배제한 상태에서 소비자들이 경제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드러낸 셈이다. 또한 그래야만 미국 정부의 목표대로 최소 연간 750만대 이상이 전기차로 전환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폭스바겐은 한발 더 나갔다. 3,000만원도 구입 부담이 있는 가격대라며 2만 유로, 한화 약 2,700만원 가량의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당초 추진했던 저가 BEV의 예상 가격보다 20%를 더 낮추는 방안이다. 원래 폭스바겐은 주행거리 400㎞ 달하는 BEV의 가격을 2만5,000유로(한화 3,300만원) 정도에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BEV의 빠른 확산을 위해선 이보다 낮은 가격의 제품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심은 폭스바겐이 과연 저가 BEV의 가격을 어떻게 낮출 것이냐에 쏠려 있다. 토마스 쉐퍼 폭스바겐 CEO는 우선 올해부터 그룹 차원의 동일한 배터리 채택으로 비용을 낮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배터리 비용을 50% 가량 절감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량 생산에 따른 가격 인하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탄소 배출을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는 자동차기업들이 앞다퉈 전기차를 생산함에 따라 배터리에 사용되는 소재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어서다. 새로운 광산 개발 등으로 소재 공급을 늘리고 있지만 전기차 생산도 크게 늘어 가격 부담을 낮추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전기차의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고민할 때 가장 주목하는 부문이 바로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다. 그래서 어떻게든 저용량 배터리를 탑재하려 하는데 이때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짧아지기 마련이어서 고민이다. 결국 주행거리 손해를 입지 않고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소재 가격이 저렴한 LFP 계열의 배터리 채용이 검토될 수밖에 없고 이때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면 미국 수출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MCN 계열 배터리의 밀도 향상을 기대하되 점진적으로 LFP 배터리의 직접 개발로 돌아서는 방안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 말은 저가 BEV를 만들기 위해선 LFP 배터리 채용이 불가피하고 이 경우 미국 수출이 쉽지 않아 폭스바겐 또한 배터리 종류에 따라 판매 지역을 구분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배터리의 투트랙 전략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가격 영향력이 큰 시장은 LFP 배터리 탑재 차종을 투입하되 제약이 있는 곳은 MCN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보조금 자체가 무한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제조사가 전기차 가격을 내리는 방법은 저렴한 소재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다. 따라서 폭스바겐 또한 LFP 배터리 기반의 저가 BEV를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완성차 기업의 저가 BEV 욕망(?)은 국내 배터리 기업의 LFP 개발 필요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프리미엄 배터리 전략에 따라 추진했던 MCN 배터리 중심의 제품 전략이 확장성 측면에선 오히려 어려울 수 있어서다. 게다가 전기차 판매로 수익을 얻으려는 완성차 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MCN 대비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LFP 배터리의 행보가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다. LFP의 경우 저렴한 소재 탓에 재활용 또는 재사용율이 떨어져 환경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지만 전기차를 대량으로 만들어 팔아야 하는 완성차 시각에선 MCN 대비 40%나 저렴한 LFP의 유혹(?)을 떨쳐내기도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폭스바겐의 저가 BEV 전략의 등장은 전기차 가격 경쟁이 본격 궤도에 오른다는 점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한국 기업들도 고민이 많다. 당장 현대차그룹도 LFP 배터리에 강점을 가진 중국 CATL과 손을 잡았는데 그 또한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LFP의 선전이 그만큼 무섭다는 뜻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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