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설 및 개발업계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들 잘 버티고 있습니다. 물론 지방 두어 곳이 부도가 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어렵다는 소리가 업계의 허풍이고 과장일까요. 업계에서는 금방 터지진 않지만 속으로 곪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건설사가 어떤 상황일까요.
일단 주택만 살펴보면 토지 매입과 인허가 등 분양 전 사업 준비 기간이 깁니다. 착공과 분양을 한 뒤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야 준공이 됩니다. 한 단지가 착공한 뒤 3년의 시간이 흘러야 입주가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2021년까지는 부동산 분양 시장이 좋았습니다. 아파트 가격도 가파르게 올랐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집 마련)과 패닉 바잉(공황 구매)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연히 분양도 잘 됐습니다. 이때까지 분양했던 물량은 공사 중이거나 입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입주(준공)하는 물량은 2019년이나 2020년 분양한 단지입니다. 건설사는 2020년과 2021년, 또 지난해 분양한 물량을 공사 중입니다. 이 때 분양한 단지들은 완판에 가까워 중도금도 들어오고 해서 현장이 정상적으로 굴러갑니다.
그런데 문제가 두 가지 생겼습니다. 첫 번째는 미분양입니다. 일단 지난해 분양한 지방 단지 중심으로 미분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구의 경우 2021년 하반기부터 공급 과잉 여파로 분양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전국 미분양은 6만가구에 육박합니다. 업계에서는 6만가구 정도를 시장 침체와 불황의 지표로 간주합니다. 적신호가 켜진 셈입니다.
미분양은 모든 환경 악화의 주범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계약률이 낮으면 분양대금이 안 들어오고 사업비와 공사비를 미리 일부 충당한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금을 갚을 수 없습니다. 건설사도 공사비를 받지 못해 외상 공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행사 이익은 날아가고 시공사도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금융권이 주로 자금을 조달한 증권사 등과 시공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악화한 건설 현장 상황입니다. 지난해만 공사비가 20~30% 인상됐다는 이야기는 계속 나왔습니다. 코로나19가 3년간 이어지면서 글로벌 물류망이 붕괴한 데다 지난해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중요 원자재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각종 건설자재 시장도 충격이 컸습니다.
업계에서는 공사비 급등의 주원인은 인건비 상승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코로나19 발생으로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근로자가 돌아오지 못한 데다 다수의 근로자가 비대면 경제 활성화 때 플랫폼 업계에 배달직 등으로 이직했습니다. 건설 현장에 근로자 기근 현상이 벌어진 겁니다. 최근 몇년간 분양 호황으로 공사 현장은 늘었는데 정작 일한 근로자가 줄어 인건비가 급등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건설노조의 갑질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 건설노조는 물론 각종 단계별 노조가 준법 투쟁을 빌미로 태업에 준하는 근무 행태를 보였습니다. 건설사에 따르면 이들 건설노조원의 생산성은 비노조의 60% 선이라고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반 근로자 1명이 할 일을 건설노조원 2명이 감당하는 꼴입니다.
건설사는 공사비 급등과 미분양 급증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입니다. 달리는 자전거처럼 지금은 페달을 밟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적자가 누적돼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겁니다. 일각에서는 신탁회사로부터 '책임준공 확약 관리형토지신탁'으로 진행하는 현장에서 이같은 문제가 더 빨리 불거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자금 여력이 넉넉하지 못한 시공사는 공사비 상승과 미분양 누적을 견딜 버퍼(완충재)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장 기능이 회복되는 게 우선입니다. 거래가 이뤄지고 실수요자들은 가격 하락기에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일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하지만 금리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경기 침체 전망도 나오고 있어 수요자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전매제한이나 중도금 대출 등의 규제를 완화한 건 의미 있어 보입니다. 미분양 해소를 위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리츠(부동산투자회사)가 움직일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시장이 작동할 기반을 마련하면 나머지는 업계에서 시장 참여자들의 몫입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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