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그들이 실리콘밸리에 남은 이유

입력 2023-01-16 18:09   수정 2023-01-18 14:33

“설사 정리해고를 당한다고 해도 한국 기업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선 칼바람이 거세다. 하지만 정보기술(IT)업계 모임에서 만난 한 구글 엔지니어는 실리콘밸리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세계 IT의 중심지 실리콘밸리에 더 큰 기회가 남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무리한 수직적 지시가 많은 경직된 기업문화가 팽배한 한국 기업에서 다시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해고 위기에 팍팍해진 삶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정리해고 규모를 지난달 1만 명에서 이달 초 1만8000명으로 확대했다. 메타는 전체 인력의 13%인 1만1000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정리해고 폭풍에서 비켜나 있던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조차 생명과학연구 자회사 베럴리 직원 15%를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테크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을 추적해온 레이오프닷에프와이아이는 지난해 줄어든 테크업계 일자리를 17만 개 이상으로 추산했다.

이달 초엔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의 직종별 연봉이 공개됐다.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채용 과정에서 연봉을 공개하도록 한 ‘급여투명화법’이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행됐기 때문이다. 채용공고를 통해 드러난 애플과 메타, 구글 등 빅테크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연봉은 경력과 직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원화 기준 1억6000만~4억8000만원 수준이었다.

한국보다 많이 받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도 최상위권으로 손꼽히는 실리콘밸리의 주거비와 생활 물가를 감안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홑벌이를 하는 4인 가구의 실리콘밸리에서의 삶은 대부분 팍팍하다.
글로벌 인재 확충하려면
해고 위기와 빠듯한 삶에도 실리콘밸리의 한국 출신 엔지니어나 디자이너는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꺼린다. 직장을 잃는다고 해도 실리콘밸리에서 다시 일자리를 찾겠다는 사람이 대다수다.

고용의 유연성은 양날의 검이다. 쉽게 해고당하는 만큼 다른 직업을 찾을 기회도 많다. 미국 채용 전문업체 잡리크루트에 따르면 테크기업에서 해고된 뒤 최근 재취업한 근로자의 79%는 3개월 이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실리콘밸리를 포기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성과 보상주의 문화다. 소프트웨어업체 어도비에서 일하는 한 데이터사이언티스트는 “스스로 성과에 책임을 지고 그에 따라 보상받는 시스템에 익숙해졌다. 실리콘밸리 문화에 익숙해진 이들은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경직된 기업문화도 이들이 한국 기업을 고려하지 않는 주요 이유다. 한국 대기업에서 일했던 한 엔지니어는 “한국에선 실력만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며 한국행을 기피하는 주변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실력보다는 화려한 ‘스펙’만을 기준으로 뽑으려는 문화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대기업들은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글로벌 인재 영입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이를 위해선 “기업문화를 글로벌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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