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리콘밸리에선 칼바람이 거세다. 하지만 정보기술(IT)업계 모임에서 만난 한 구글 엔지니어는 실리콘밸리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세계 IT의 중심지 실리콘밸리에 더 큰 기회가 남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무리한 수직적 지시가 많은 경직된 기업문화가 팽배한 한국 기업에서 다시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달 초엔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의 직종별 연봉이 공개됐다.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채용 과정에서 연봉을 공개하도록 한 ‘급여투명화법’이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행됐기 때문이다. 채용공고를 통해 드러난 애플과 메타, 구글 등 빅테크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연봉은 경력과 직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원화 기준 1억6000만~4억8000만원 수준이었다.
한국보다 많이 받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도 최상위권으로 손꼽히는 실리콘밸리의 주거비와 생활 물가를 감안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홑벌이를 하는 4인 가구의 실리콘밸리에서의 삶은 대부분 팍팍하다.
고용의 유연성은 양날의 검이다. 쉽게 해고당하는 만큼 다른 직업을 찾을 기회도 많다. 미국 채용 전문업체 잡리크루트에 따르면 테크기업에서 해고된 뒤 최근 재취업한 근로자의 79%는 3개월 이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실리콘밸리를 포기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성과 보상주의 문화다. 소프트웨어업체 어도비에서 일하는 한 데이터사이언티스트는 “스스로 성과에 책임을 지고 그에 따라 보상받는 시스템에 익숙해졌다. 실리콘밸리 문화에 익숙해진 이들은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경직된 기업문화도 이들이 한국 기업을 고려하지 않는 주요 이유다. 한국 대기업에서 일했던 한 엔지니어는 “한국에선 실력만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며 한국행을 기피하는 주변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실력보다는 화려한 ‘스펙’만을 기준으로 뽑으려는 문화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대기업들은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글로벌 인재 영입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이를 위해선 “기업문화를 글로벌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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