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서는 스팸 같은 통조림 판매량으로 불황 여부를 감지한다. 백화점업계는 “스팸 판매량은 어두운 소비 전망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들이 저렴한 제품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 유통기업들은 올해 첫 장기 연휴(21~24일)를 앞두고 가라앉은 경기를 체감하고 있다. 고가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백화점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강남점 매출이 2조8398억원에 달해 전년 대비 13.9% 불어났다. 매출 신기록이다.
하지만 새해 들어 백화점을 찾는 방문객은 뚝 끊겼다. 한 백화점 패션매장 담당자는 “연말 최대 성수기가 끝나고 나니 방문객들의 발길이 뜸해져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영향으로 야외 나들이족이 크게 늘면서 지난해 최고 실적을 거둔 편의점업계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BGF리테일의 작년 1~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조6665억원과 200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4%, 33.6% 증가했다.
하지만 1월 들어 ‘급브레이크’가 걸린 모양새다. 한 편의점업체 관계자는 “고객 한 명이 집어 드는 물건 가격(객단가)이 올 들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 소매유통업체 5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1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는 64로 집계됐다. 2002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설 선물 인심도 박해지고 있다. 엔데믹 기대로 프리미엄 세트가 인기를 끌었던 지난해와 달리 실용적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세트에 주로 손님이 몰린다.
이마트가 지난달 1일부터 이달 9일까지 집계한 선물세트 예약 판매량에 따르면 5만원 이상 10만원 미만 선물세트 매출이 지난해 설 대비 45.1% 증가했다.
가성비 제품인 스팸, 참치 등 통조림 선물세트는 11.6% 불어났다. 반면 20만원짜리 프리미엄 세트 매출은 6.0% 늘어나는 데 그쳤다. 롯데마트도 마찬가지다. 10만원 이상 선물세트 매출 증가율은 5%에 머물렀다. 대신 5만원 미만 세트 판매량은 20% 증가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물가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B+급 과일 선물을 준비했는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소개했다.
반면 명절을 앞두고 프리미엄 상품을 집중적으로 마련해 준비한 현대백화점의 경우 설 선물 매출 증가율이 작년 설 대비 3.4%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설 선물 매출이 전년보다 50%가량 늘어날 정도로 업황이 좋았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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