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로봇 대장주가 선명해진 듯합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의 연구원들이 창업해 만든 벤처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가파른 상승세로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79% 넘게 올랐습니다. 작년 마지막 거래일의 주가가 3만4450원이었지만, 이달 18일에 회사는 6만17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작년 5월 기록한 연중 최저가(1만9300원) 대비로는 무려 220%가량 뛰었습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를 비롯한 로봇주들은 주가 부양에 삼성전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로봇주가 급등할 때 무엇이 재료인가 살펴보면, 대부분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의 로봇 사업 강화 소식이 전해진 뒤였습니다. 연초부터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크게 뛴 것도 삼성전자 영향입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지난 3일 시설자금과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589억8208만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거든요.
그런데 이젠 삼성도 로봇주, 특히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덕을 보게 됐습니다. 바로 펀드를 통해서입니다. 삼성자산운용은 작년 11월 국내 로봇주를 한 바구니에 담은 로봇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 업계 처음을 내놓았는데요. 이 ETF가 올 들어 지난 19일까지 12.55% 상승한 겁니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6.44%)을 두 배가량 웃도는 성과입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당초 이 로봇 ETF엔 원래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담기지 않을 예정이었다는 겁니다. 이 상품은 액티브 ETF여서 비교지수를 70%만큼 추종하되 남은 30% 범위에선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의 재량으로 종목을 넣고 빼며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요. 당초 지수사인 NH투자증권이 개발한 지수와 현재 'KODEX K-로봇액티브'를 비교해 보면 종목 구성이 조금 다릅니다. 카카오가 빠졌고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두산 등이 새로 들어갔습니다.
정대호 삼성액티브자산운용 운용2팀 매니저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성장성을 높이 점쳐 재량으로 추가했다"며 "로봇 ETF를 구상할 때부터 종목에 넣을 로봇 관련 기업들과 미팅을 진행하면서 기업분석을 했는데 다른 회사보다 경쟁력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KODEX K-로봇액티브'의 자산구성내역(Portfolio Deposit File·PDF)을 잘 살펴보면 또 다른 흥밋거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국민주 삼성전자보다도 더 많이 담긴 때가 있었다는 겁니다. 삼성이 삼성보다 더 많이 담은 게 중소형주라니, 시가총액 순으로 비중을 편성하는 게 일반적인 ETF에서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확장자'로 알고 있는 PDF는 ETF 시장에선 다른 의미인데요. ETF가 무슨 종목을 담았는가 내역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를 뜻합니다. 각 종목들의 리스트와 비중이 날마다 공개되는 게 특징입니다.
이 ETF가 작년 11월 15일 처음 상장할 때만 해도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전체 종목들 가운데 13번째 비중으로 담겼습니다. 상위 5종목인 삼성전자와 LG전자, LG이노텍, 네이버, 두산이 약 40%를 채웠고요. 그런데 올 들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순위는 점점 올라와, 지난 17일엔 9.58%의 비중으로 PDF 내 최대 비중 종목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삼성전자(9.45%)도 앞선 것이죠. 이후 18일과 19일에도 삼성전자, LG전자 다음으로 세 번째 순서에 이름을 올리며 이 ETF의 핵심 종목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습니다.
삼성자산운용으로서도 '땡 잡은' 상황일 겁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좋게 보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급등할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삼성자산운용은 오히려 최근 레인보우로보틱스 비중을 줄였습니다. 주가가 워낙 가파르게 오르니 10% 룰을 맞추기 위해선 주식수를 조절할 수밖에 없거든요. 액티브 ETF는 패시브 ETF와 다르게 종목 1개당 비중 한도가 10% 비중입니다. 때문에 삼성액티브운용 펀드매니저들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상장 당시 주식수(계약수) 823주에서 691주로 줄었습니다.
이미 많이 오른 로봇주와 로봇 ETF,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요? 증권가는 낙관론이 우세합니다.
김두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중 패권 전쟁에 따른 미국 생산라인 자동화 추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협동로봇 수요 증대 등을 감안할 때 로봇산업은 더이상 단기 테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에서부터 AI 반도체와 로봇 등 분야를 육성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현 정권에선 더욱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 단행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라며 "정부와 대기업이 적극 개입하는 시장인 만큼 중장기적 우상향이 예상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시장이 성장하려면, 일차적으로 생산능력(CAPA) 증설과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뤄저야 하며 그 다음 단계에서 실적시즌 옥석가리기가 진행된다"며 "지금의 로봇시장은 아직 생산능력을 늘려야 하는 구간이다. 눈에 보이는 실적은 내년께부터 짚어봐도 늦지 않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일부에선 신중론도 나옵니다. 이재욱 메리츠증권 대구센터1지점 과장은 "국내 대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로 생각하고 투자하고 있고 향후 성장성이 분명한 섹터이지만 최근 레인보우로보틱스를 비롯해 일부 종목은 실적에 비해 가파르게 오른것도 사실"이라며 "로봇 테마 순환매로 대부분 종목들이 급등했다면 기간 조정을 거치는 동안 실제 대기업의 투자를 받았다든가 실적이 성장했다든가, 또는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 위주로 공부를 지속해서 다음 사이클을 준비하는 것이 좋아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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