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종" "단교할 것" 이란의 말폭탄…尹발언 전 4번 초치 있었다

입력 2023-01-21 18:00   수정 2023-02-19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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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란 문제가 '한국케미호' 나포 사건 이후 2년만에 외교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크부대에서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말하자 이란 외무부는 우리 정부에 설명을 요구했고, 이에 양국 대사를 초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모든 일이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비롯된 것일까. 양국의 최근 외교관계를 살펴보면 속내는 다소 복잡하다. 외교부는 지난 4년 간 총 5번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트리 주한 이란대사를 청사로 불러들였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 이란 제재에 따른 원유 대금 동결 문제 등 악재가 거듭됐다. 이란은 그 때마다 '말 폭탄'을 퍼부으며 관계는 더욱 나빠졌다.
호르무즈 파병 갈등에 "미국과 주종" 막말
샤베스트리 대사는 2018년 10월 부임했다. 그의 첫 번째 초치는 2020년 1월 이뤄졌다. 샤베스트리 대사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다면 단교까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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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가셈 솔레이마니 암살사건'으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은 2020년 1월 무인공격기로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폭격해 이슬람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의 지휘관인 가셈 솔레이마니 소장을 암살했다. 그는 당시 이란의 실질적 2인자로 평가됐다.

이란이 '피의 복수'를 공언하면서 양국 간 긴장감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미국은 이란 남쪽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에 영국, 호주,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5개국과 함께 호위연합사령부를 설치했다. 우리나라에도 파병을 요청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한국이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결국 정부는 '독자 작전'을 위한 청해부대 파견을 결정했다. 샤베스트리 대사는 사전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그해 7월 샤베스트리 대사는 또 한 번 초치됐다. 세예드 아바스 무사비 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한국이 미국과 "주종 관계(master-servant)를 맺고 있다"고 한 말이 논란이 되면서다. 무사비 전 대변인은 한국에 동결된 이란 원유 수출대금을 언급하며 "외교적으로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하고 국제 법정에 소송해 이 채무를 갚도록 하겠다"라고도 했다.
"70억弗 돌려달라" 선박 인질극까지 벌인 이란
무사비 전 대변인이 언급한 '원유 수출 동결 대금' 문제는 2018년 이래 양국관계가 악화된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악화된 미-이란 관계 때문에 발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5월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를 선언했다. 곧이어 대(對)이란 제재를 시작했고 이란 은행으로 가는 자금줄이 막혔다. 한국이 이란에서 구매한 원유에 대한 대금 약 70억달러(8조6000억원 규모)도 마찬가지다.



<yonhap photo-4894=""> '한국케미호' 나포사건 역시 결국 이 대금을 돌려달라는 이란의 인질극이었다. 이란혁명수비대는 2020년 1월 4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우리 유조선을 '해양 오염' 혐의로 납치했다. 우리 정부가 한국 선박 나포가 인질극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자, 다음날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이란 자금 70억 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고 반박했다. 샤베스트리 대사는 세 번째로 초치됐다.

한국케미호는 양국 정부 교섭에 따라 풀려났지만 원유 동결 대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지 않는 이상 별다른 해법은 없었다.

이란은 이 문제를 거듭 걸고 넘어졌다. 그해 4월 이란의 보수매체 '카이한'은 편집장 기명 칼럼을 통해 "이란은 한국으로 향하는 화물선 또는 한국에서 출발한 선박을 폐쇄해야 한다"며 "이들이 이란에 진 70억달러의 빚을 갚을 때까지 통행을 절대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는 또 한 번 샤베스트리 대사를 외교부로 불렀다. 그의 취임 후 네 번째 초치였다.
인권문제도 갈등 축으로 … 野 "대통령이 불 붙여"
윤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지난 18일 레자 나자피 이란 법무차관이 테헤란에서 윤강현 이란 대사를, 다음날 조현동 1차관이 샤베스트리 대사를 맞초치하면서 양국 관계는 다시 한 번 얼어붙었다.

이번에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동결 원유대금 문제에 더해 또 하나의 전선이 생겼다. 바로 인권 문제다.

이란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인 '히잡시위'에 강경 대처하고 있다. 군과 경찰을 동원해 강경 진압한 것은 물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접속까지 차단했다. 일부 시위 주도자는 사형시켰다.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들은 이러한 이란의 반인권 조치를 규탄하고 있다. 인권 외교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도 대열에 동참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유엔 총회에서 이란 인권결의안에, 12월에는 이란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서 제명하는 결의에 찬성했다. 이란이 윤 대통령 발언을 문제삼는 데는 이같은 인권 정책에 대한 반발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인권 정책을 확고한 기조로 삼고 있는 만큼 양국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9일 “인권의 보편적 가치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사안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번 건과 무관하게 정부의 입장은 사안별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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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결자금 문제, 윤 대통령의 핵무장 관련 발언, 이런 것들을 문제 삼는 것을 보고 초점이 조금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대통령실 관계자, 19일 다보스 브리핑)"는 대통령실의 입장은 이같은 한·이란 관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의 발언 자체보다 양국 간 여러 현안으로 문제를 확대하는 게 이란 정부의 속셈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야권은 위태위태하던 한·이란 관계에 윤 대통령의 말실수가 불을 붙인 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이란 친선협회소속 민주당·무소속 의원들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따른 국내 이란 동결 자금 문제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이란 관계에 이번 일이 악영향을 미친다면 큰 손실"이라며 "정부는 진솔한 자세로 충분히 해명하고 필요하면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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