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콩쿠르 여제(女帝)’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혜선(58·사진)이 50여 년의 음악 인생을 담은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를 펴냈다.
백혜선은 3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흔히 말하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처럼 무겁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며 “일평생 피아노를 쳐온 한 명의 연주자가 일기장에 끄적인, 조금은 특별한 일들과 재밌는 일화를 담아낸 글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아노를 처음 접한 4세부터 미국 명문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교수로 활동 중인 현재까지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역경과 극복’이다. 백혜선이 책에 ‘좌절의 스페셜리스트’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다. “20대 후반에 피아노를 계속해서는 혼자 밥 벌어 먹고살기도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식당 종업원 일도 해보고 전화회사 영업사원이 되려고도 했죠. 이후 밴클라이번 콩쿠르에 나갔다가 처음으로 1차에서 떨어져도 봤고요.”
백혜선은 1989년 윌리엄카펠 국제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1990년 리즈 콩쿠르 입상, 1991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4위, 199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3위’를 차지하며 ‘콩쿠르 여제’로 이름을 떨쳤다. 한국 피아니스트들이 거대한 장벽처럼 느끼던 콩쿠르의 문을 열어젖힌 주역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수상 이듬해에는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모교이자 미국에서 유서 깊은 음악 대학인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한 것, 최연소로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된 것 모두 역경을 이겨낸 뒤의 일입니다. 좌절과 불안, 걱정은 성장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죠. 인생에서 좌절이란 곧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반열에 오른 지금도 끊임없이 ‘음악적 좌절’에 빠진다고 했다. “임윤찬과 조성진 등 놀라운 재능을 보이는 어린 피아니스트들을 보면 참 자랑스러우면서도 그들의 엄청난 힘에 놀라요. 어떻게 그들과 힘으로 비교하겠습니까. 저는 그들과 달리 ‘어떻게 하면 연주를 통한 자극을 청중에게 오래 남길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합니다.”
백혜선은 오는 4월 11일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 무대로 청중과 만난다. 그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청중이 들어도 마치 좋은 책을 읽는 것처럼 가슴에 깊은 울림이 남는 연주, 머릿속에서 상상이 일어나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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