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룹 모두 제주도에 '한국형 위스키'를 제조하기 위한 증류소 건설을 추진 중인 가운데, 롯데가 이르면 상반기 중 먼저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와인 유통시장에서도 점유율 1위로 올라선 신세계와 국내 1호 와인브랜드 '마주앙'을 가진 롯데간 자존심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제주공장은 롯데칠성음료가 제주 감귤 주스 등 생산을 위해 2002년 9월 1만799㎡(약 3300평) 부지에 준공한 생산기지다. 여기에 위스키 등을 제조할 수 있는 증류시설이 들어서면 ‘위스키 제조 불모지’인 국내에서 대기업이 짓는 첫 증류소가 될 전망이다.
특히 롯데는 '술의 제왕'이라 불리는 브랜디를 국산 농산물로 만들어 한국 대표 고급 술로 육성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위스키가 곡물을 원료로 만든 술을 증류해 숙성한 것이라면, 브랜디는 과일주를 증류해 숙성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프랑스 꼬냑이 대표적인 브랜디다.
롯데가 염두에 두고 있는 브랜디 원료는 제주 감귤이다. 롯데는 제주농가로부터 매년 1만톤에 달하는 감귤을 수매해 주스를 만들고 있지만, 주스 소비량이 점차 줄어들어 골머리를 앓아왔다.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판매량이 감소한다고 감귤 수매량을 무조건 줄일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다.
감귤 브랜디는 롯데가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 농업법인 시트러스가 '신례명주'라는 감귤 브랜디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방송에서 이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남아도는 감귤을 냉동해 저장하는 것에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브랜디는 시간이 흐를 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감귤 브랜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지역 농가를 돕는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와인 유통시장에선 신세계가 롯데를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다. 신세계L&B는 지난해 매출 2351억원으로 업계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세계는 세계 최초로 탄소 배출 0% 인증을 받은 칠레 ‘코노수르’ 와이너리를 선점한 것을 비롯해 프리미엄 와인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맞서 롯데는 외부에서 와인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고 해외 와이너리 인수를 추진하는 등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977년 롯데가 국내 첫 와인브랜드인 마주앙을 출시한 명성을 되살려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술을 만들라는 주문을 수 차례 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애주가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해외에서 맛본 술을 주류 수입사업부에 직접 추천할 정도로 술 사업에 애착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롯데와 신세계가 국산 위스키 사업을 벌이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계절별 온도차가 크고 여름에 습해 위스키 제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을 극복해야한다.
종가세가 적용되는 위스키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무엇보다 환경 문제 등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설득해야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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