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중동 붐이 시작된 1970년대 중반, 중동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한국 건설기업들은 약속한 기간 내에 최상의 기술로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현지에 투입된 한국의 수많은 건설인은 폭염과 모래바람에도 쉼 없이 작업에 임했고, 심지어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도 끝까지 건설 현장을 지켰다. 약속을 성실히 지키는 모습을 보며 바라카 원전 건설 당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은 “기적과 같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지난 세월 대한민국 건설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 카타르 국립박물관, 두바이의 아틀란티스호텔 등 최상의 기술을 요구하는 건설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완수했다. 대한민국 건설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UAE의 투자 약속을 얻어낸 윤석열 대통령은 순방에 동행한 각 부처 장관들에게 “양국 간 두터운 신뢰 위에서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킬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980억달러 규모의 UAE 건설시장 공략을 위해 다각적인 수주 지원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수주물량만큼이나 정부의 관심이 필요한 것은 양질의 설계 역량을 확보하는 부분이다. 건설 수주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부가가치의 많은 부분이 건물을 디자인하는 설계 단계에서 정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설 수주를 성사했음에도 설계기술 부족으로 정작 적자를 기록하며 막을 내린 과거 사례도 많다. 노동력 중심의 시공 단계뿐 아니라 엔지니어링이 중심이 된 설계 단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과거 중동 붐에 기여했던 양질의 설계기술자들은 대부분 은퇴했고, 명맥을 이어갈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기술직을 기피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정부가 제도적 차원에서 개선하지 않고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선진 건설산업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기술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통령과 장관이 제2의 중동 붐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건설 수주는 성사되더라도 실행이 원활히 되지 않을 수 있어 우려된다. 실행이 부실하면 대한민국이 쌓은 신뢰에 금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은 그 시대의 신기술을 담는 그릇이다. 건설산업을 필두로 우리의 다른 핵심 기술도 패키지로 함께 수출될 수 있도록 전략을 잘 세워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UAE 순방길에서 우리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건설산업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건축 관련 법 제도에 시름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선진 건설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국내법과 제도를 식별하고 개선해 국제적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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