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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 오니 북쪽 지방에 있었을 때보다 훨씬 기운이 나. 한낮의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밀밭에서 그늘도 없이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어. 햇살을 받으며 하루종일 즐겁게 노래하는 매미처럼. 아, 서른다섯이 아니라 스물다섯 살에 내가 이곳에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1888년 6월 19일, 빈센트 반 고흐가 동료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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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눈부신 햇살을 받아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지중해. 구불구불한 해안선 너머 물결치는 황금빛 밀밭. 고흐에게 프로방스의 해바라기는 고향인 네덜란드보다 더 진한 노란색이었고, 하늘은 파리보다 더욱 푸르렀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화가였던 고흐는 이곳에서 인생의 마지막 2년을 보내며 특유의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 ‘해바라기’와 ‘별이 빛나는 밤’ 등 전설적인 대표작들을 남겼다. 프로방스가 품고 있는 강렬한 색이 그의 예술혼을 일깨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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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처럼 프로방스를 사랑한 화가는 셀 수 없이 많다. 르누아르 세잔 고갱 피카소 마티스 샤갈 등 수많은 거장이 영감을 얻었고, 떠난 후에도 평생 고향처럼 그리워한 곳이 프로방스다. 4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알트1에서 개인전 개막을 앞둔 다비드 자맹도 그랬다. 프로방스에서 태어나 미술을 공부하러 프랑스 북부로 갔던 그는 고향의 색채를 캔버스에 담아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와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화가들은 왜 이다지도 프로방스를 사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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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도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자연과 햇빛이 만들어낸 강렬한 색채에 홀린 듯 끌렸다. 르누아르를 비롯해 빛의 효과에 집중했던 인상주의 거장들이 프로방스로 모여든 것도 당연하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고흐다. 그의 눈에는 밤조차 색의 축제였다. “어느 날 밤 해변을 따라 걸었어. 하늘은 짙은 푸른색이었고, 코발트색보다 더 짙푸른 구름도 있었어. 별들은 초록색과 연분홍색, 흰색으로 보석처럼 반짝였지. (중략) 바다는 한없이 깊은 군청색, 해변은 보라색과 연한 적갈색이었어.”(1888년 6월 3일 동생에게)
이렇게 모여든 천재들은 서로 영감을 주며 예술의 꽃을 활짝 피웠다. 비록 둘의 동거가 비극으로 끝나긴 했지만 고흐와 고갱은 한때 한집에서 같이 살았고, 수십 년 뒤 피카소와 마티스는 니스 인근에 살며 ‘세기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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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릴 때마다 자맹은 고향인 프로방스의 햇살을 떠올렸다. 이렇게 그린 작품에는 프로방스 특유의 따뜻한 색감과 생동감 있는 이미지가 살아 있었다. 그가 스물여섯 살이던 1996년 상업 화랑에서 처음 전시를 시작한 직후부터 성공 가도를 걸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업 작가로 성공한 덕분에 2013년엔 꿈에 그리던 프로방스 지역(위제스)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 있었고, 이후 더욱 역동적이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자맹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프로방스로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푸르른 여름의 올리브 나무, 마을 한가운데 광장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야외 음악회…. 프로방스로 돌아온 자맹에겐 이제 보고 듣고 숨쉬는 모든 것이 작품이 된다. 아몬드 나무를 그린 고흐의 그림,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가 윌리 로니스가 빵을 들고 달려가는 아이를 찍은 사진, 피카소의 초상화 등 프로방스를 사랑한 선배들의 걸작들도 그의 자양분이다. 그림을 통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햇살과 행복을 전하는 게 자맹의 목표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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