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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阿鼻叫喚). 산스크리트어에서 음역, 의역해 만든 이 단어는 결코 구제받을 수 없는 끝없는 고통의 울부짖음을 의미한다. 몇 년 전 울릉도 칡소 연구를 하던 나는 울릉도행 페리 속에서 이 단어가 담고자 한 의미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고 듣고 경험했다. 잔잔한 호수에서 요트만 타도 멀미하는 내게 동해의 물결은 ‘수퍼 빌런’처럼 느껴졌다. 울릉도 칡소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싶은 연구자의 의지를 어떻게든 꺾으려는 악마…. 몇 년 전 봄의 악몽은 한동안 울릉도와의 인연을 끊게 만들었다.
울릉도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최근 일이다. 2021년 9월에 취항한 대형 크루즈는 파도의 영향을 훨씬 덜 받아 ‘아비규환’ 멀미의 걱정은 사라졌다. 크루즈는 웬만한 기상 상황에도 출항한다. 지금껏 여섯 번, 울릉도에 당당히 입도했다.
출소할 때면 순백의 두부를 먹으며 죄를 씻고 새사람으로 새 출발 하는 한국의 오랜 전통을 아는가. 나는 울렁이는 속, 울렁대는 가슴으로 울릉도에 도착하면 저동항에서 순백의 오징어 내장으로 맑게 끓여낸 오징어 내장탕을 한술 뜨며 일정을 시작하는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징어의 내장을 자세히 관찰해 본 사람이 전 세계에 몇이나 될까. 잘 끓인 오징어 내장탕 속의 내장은 꽤 세련된 예술적 형태를 하고 있다. 탕 속 각 내장 부위는 특유의 모양을 가지고 있고, 그 모양은 마치 해체주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조물의 외관과도 닮았다. 나는 생각했다. ‘프랭크 게리는 분명히 오징어 내장을 관찰한 적이 있을 거야. 아니라면 그는 실로 천재 건축가임이 분명하지.’
울릉도식 오징어 내장탕 안에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위에서 내려봤을 때의 모습, 스페인 리오하에 있는 와이너리 마르케스 데 리스칼의 좌측 상단 지붕 구조물의 모습처럼 보인다. 맑은 탕 속에서 몽글몽글 떠다니는 이 구조물을 입으로 가져가 가볍게 깨물었을 때 어이없이 터지는 그 보드라우면서 눅진한 식감은 육지의 그 어떤 식재료도 낼 수 없는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울릉도 집집마다 레시피는 다르지만 오징어 내장탕에는 공통적으로 무와 호박이 들어간다. 그러니 이 국물은 울릉도식 시원함의 끝판왕이다. 탕과 함께 먹을 밥을 골라야 한다면, 이왕이면 공기밥보다는 홍합밥, 따개비밥 중에 하나다. 역시 울릉도만의 독특한 레시피다. 간장을 살짝 둘러 먹는데 인심 좋은 식당에선 이 울릉도 특유의 밥을 주문하면 오징어 내장탕을 한 사발 그냥 내주는 곳도 있다.
현행 마블링 중심의 등급제에서 좋은 가격을 받으려면 근내 지방 함량을 끌어 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 사육 후반기에 곡물 사료를 집중적으로 먹이는 사육 방식을 쓴다. 하지만 울릉도에서는 등급판정이 없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 대신 울릉도의 산야초를 먹여 그 특유의 향이 육향에 배어든다.
사람이 억지로 개량을 거의 하지 않은 칡소가 울릉도에서 해풍과 산야초로 자라면 어떤 소고기도 낼 수 없는 독특한 육향을 만든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어렸을 적 먹었던 그 고기의 맛’이라는 분이 많다. 짙은 육색의 울릉도 칡소는 눈꽃처럼 피어난 마블링을 즐기는 고기가 아니라 묵직한 육향을 즐기는 미식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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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서울대 푸드비즈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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